찐득한 환대의 기록

나는 왜 글을 쓸까? 왜 글쓰기를 가르칠까?

by 허현

기록 이야기


“서평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서평을 계속 쓰고 계시더라구요.”

“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이죠?”

TCF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한 글쓰기 연수의 강사 겸 진행자이신 김기현 목사님의 질문에 왜 내 글은 서평 또는 독서감상문이 많을까? 아니 점점 비중이 커질까? 난 왜 책을 읽고 글을 쓴 것이 많을까?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되돌아 찾아보니 2005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글이 146편이다(이 중에는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 책읽는 인디 활동이나 예스24 서평단에 선정되어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도 있다). 2015년에는 매일신문에 대구교육청 인문학 지원단 활동으로 연결되어 기고한 글(선생님이 들려주는 한 단락 인문학) 6편까지 합치면 152편이다. 1년에 평균 약 9편 정도를 쓴 것이다. 서평이나 감상문이 아닌 일기, 시, 수필, 편지, 교단일기 형식의 글(129편-온라인에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글, 어릴 때 손으로 썼던 일기장이나 공책, 한글 프로그램에 입력하여 외장하드 등에 저장한 오프라인에 있는 글까지 합치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까지 합치면 최소 한 달에 1~2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0월에서 12월초까지 교육이음연구소에서 진행한 교육철학 쓰기 연수를 통해 약 120여쪽 분량의 저의 교육철학 에세이(환대 이야기)도 정식 출간이 되었다.


글쓰기를 많이 하고 습관이 되다 보니 글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개요짜기를 반드시 거쳤지만, 지금은 쓰면서 개요을 잡고, 글의 제목을 정한다. 대부분 손글씨보다 컴퓨터로 쓰기에 자유롭게 자르고 붙일 수 있어서 아닐까? 말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에 글을 쓰기 전에도 머리에서 수없이 개요를 세우고 수정하고 허무는 연습이 많이 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밤을 새며 이문열의 삼국지 평전 10권을 읽기도 했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때는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계몽사 위전 전집 수십 권, 백과사전 수십 권을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지금도 독서토론 모임 2개를 하고 있다. 원래는 오프라인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모임이 된 것과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한 독서토론 모임이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한 달에 1~2권은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서평이나 감상문을 쓰지 않고 읽기만 한 도서, 독서토론 모임이나 서평단과 관계없이 본 책도 많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자동차, 카메라, 전자기기, 게임 등이 아닌 책 욕심이 많아 구입한 도서가 책방의 5단이나 6단 책장 9개에 빼곡이 꽂혀 있다. 이것의 절반 정도, 아니 그 이상 아직 읽지도 못한 것도 있다. 이사할 때 아내의 핀잔을 그래서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환대 이야기


“그 때의 고통을 느끼면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없기에 억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대학교 재학 중에 저에 대해 잘 알고 싶어서 각종 심리검사를 하고 학생생활연구소에서 상담을 받을 때이다. 상담 선생님이 제가 어린 시절의 슬프거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상황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덤덤하게 아무 표정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영화 ‘시’를 보면 미자의 시쓰기는 험악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시쓰는 법을 김용택 시인에게 배우기 시작할 때는 사과를 오감으로 관찰하고 느끼지 못해 시쓰기를 어려워 하였으나, 미자가 쓴 ‘아네스의 기도’는 현실을 오감은 물론 영혼까지 사용하여 마주보고 경험이나 체험한 것을 쓴 것으로 보인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서도 ‘자기 표현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나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위풍당당 여우꼬리 3편에서 할로윈 축제 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 번째 꼬리를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 고통이나 아픔이 덜 아프게 해주거나 감당할 수 있는 통증이 되도록 해주는 진통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에 독서치료나 글쓰기 치료, 이야기 치료가 있다. 이 상담심리 교재들에 대표적인 텍스트로 다윗의 시편을 많이 인용하고 해설하는 것을 본다. ‘처음 부모’도 나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본 책 중에 한 권이다.


이런 상담(독서치료)에서는 독서를 통해 등장인물들에 대한 동화나 공감, 감정이입을 통해 책을 매개로 부담을 줄여서 상담을 한다. 책이 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영은 작가의 산티아고 순례기에 나오는 노란 화살표의 역할을 나는 독서와 글쓰기로 한 것이 아닐까?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말하는 것에 부담이 큰 내향성이 강한 저에게는 글쓰기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시원하다. 말보다는 그래도 내 감정이나 생각을 더 많이 드러낼 수 있고,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 내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과 좀 더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는 것 같다.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는 제가 쓴 손편지로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결혼기념일이나 아내의 생일에 아내가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꽃이나 케익 등의 화려하거나 값 나가는 물건이 아닌 손편지이다. 한 번씩 제 아내가 말하길,

“말은 앞뒤 다 자르고 말하거나 말을 잘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은 안 써도 될 말을 쓰거나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려 해요.”라고 할 때가 많다.



기록 이야기‘


“그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일탈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살아 온 것은 내면에 어떤 에너지(힘?)가 있어서 가능했어요.” 정확히 상담사가 한 말이 기억하지는 않지만, 이런 의미의 말을 마지막 상담하는 날 상담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마치 ‘튜브’의 학원 버스 운전기사 박실영이 김성곤을 다시 일으켜 준 말과 비슷한 것 같다. 어쩌면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인도하심이지 않을까?


지난 다섯 번의 TCF 글쓰기 연수 모임을 하는 동안 쓴 5편의 글들을 되돌아본다. 왜, 내가 쓴 수많은 글들 중에 이것들(특히 4편의 서평)을 선택하여 쓰거나 게시했을까? 용기와 같이 지금 제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도 있지 않았을까? 저의 정체성이나 나다움을 표현하거나 나답게 자라가도록 하는 글들이 아니었을까? 좀 더 잘 살기(?) 위한 아니 좀 더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직시하고 제 마음의 소리나 정서(감정)를 회피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잘 견디기 위한 내용들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본능적(?)으로 한 것이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관련 상담이나 심리학 서적을 읽고, 알고 한 활동도 있을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특히 서평이나 감상문 쓰기)는 우선은 제게 하는 포옹이며 서현숙 선생님이 쓴 ‘소년을 읽다’에서 말하는 찐득한 환대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즉,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두렵지만 직면하는 가운데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마음의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진료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자가 치료나 자기 치유의 행위가 아닐까?


이렇게 맛 본 안아줌이나 환대를 제가 만나는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기에 글쓰기 교육에도 관심이 많고 잘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글쓰기는 저나 아이들이 맛보거나 경험한 환대가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행동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정서나 상처 등을 묻어두거나 억압해서 더 고통스러워지지 않도록 하는 진통소염제를 함께 먹는 행위가 아닐까(어쩌면 치료제나 영양제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함께 표현해서 치유하고 가벼워지고 시원해지도록 하는, 눈에 보이도록 하는 활동이 아닐까?


* https://blog.naver.com/twoh72 네이버 블로그


*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 단락 인문학 – 매일신문

http://news.imaeil.com/page/view/2015061505462540639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http://news.imaeil.com/page/view/2015072701122864332

살아있네!-마당을 나온 암탉

http://news.imaeil.com/page/view/2015091401514639246

제비야, 행복하니?-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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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커가는 두려움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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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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