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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뉴월 Jun 27. 2024

부모와 나

내가 가진 부모 자식관계는 유토피아와 같은 것일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과묵하다. 

집에서는 잇몸을 보이며 웃지도 않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남자 친구(현 남편)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같이 있을 때 광대가 내려올 줄 모르고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는 충격을 받을 얼굴로 굉장히 섭섭해하셨다. 

배 아파 낳고 힘들게 키운 딸이 20 몇 년을 생판 남으로 지낸 사람을 만나 평생 자신은 본 적도 없는 화색 돋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라도 괘씸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어쩌리... 우리 집에서는 '대화'가 통화지 않는 것을...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이고, 나는 5살 남동생을 둔 K 장녀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 얼굴을 보는 것이 다였고, 동생의 밥을 챙기고 유치원 퇴원을 시키는 것을 나의 몫이었다. 사실, 나는 딱히 이런 나의 역할에 불만을 가지고 크진 않았다. 집에서 혼자 내 방에만 불을 켜고 라디오를 켜놓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좋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부모님과의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엄마와 아빠와 베스트프랜드처럼 잘 지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부모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년 시절 나는 부모님과 함께 내 진로나 학교생활에 대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우리 가족들은 얘기를 시작하면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대화가 끝난다. 대화가 아닌 고요 속 외침 수준이다.


20살 이후부터 나는 이런 가족들과 있는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가족들과 함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없고, 우리 부모님과 나는 왜 인생관, 미래, 현실 속 고민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도 적잖이 당황하셨을 것 같다. 나를 키워오며 한 번도 이런 말을 해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거운 대화를 하자 하니 놀라셨을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길 원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그들에게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요즘은 이런 것들이 뭐가 중요하나 싶고, 딱히 부모님과 이런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날 때마다 얘기하시는 과거의 영광과 지금까지의 역사를 들으며 적절한 반응을 해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 하나의 모양을 가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속에서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모양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또 다른 관계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평생 재정의를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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