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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luck Oct 13. 2020

디킨스가 살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현대지성)

  워낙에 유명한 작품인지라 줄거리를 약술하는 것조차도 필요가 없을듯하다. 아주 축약해서 말한다면, "고아인 줄 알고 범죄 집단에 깊게 발을 담글뻔한 주인공이 귀족급의 선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구해지면서 자신이 귀족의 자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주인공을 괴롭히던 악당들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백 년 전에 쓰인 소설이라 사건 전개에서 우연의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고, 악당들을 뒤에서 사주하던 인물이 의인들의 추궁에 사건 전말을 술술 불어버리는 등 지금 눈높이로 보면 이상하다 싶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디킨스 특유의 사회풍자와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심성들은 충만하다.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다. 악역들이 특히. 


  그러나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이 시대 즉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전 영국에서 중류층에도 못 미치거나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게 되었다.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도 어차피 그 작가가 살 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 시대의 영향에서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다. 디킨스는 이 작품을 포함한 다른 작품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뜻함, 애잔함, 불의에 대한 분노는 늘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19세기 영국의 부조리함은 아래와 같았다. 




1. 개념조차 없었던 아동인권 


  주인공 올리버는 고아였기 때문에 구빈원에서 키워지다가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팔려나간다." 이 팔려나간다는 표현이 타당한 것이 구빈원에서는 올리버가 좀 자라니까 입이라도 줄이려고 그랬겠지만 데려갈 사람을 구한다면서 데려가는 사람에게는 5파운드를 주겠다고 공고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장의사의 도제로 팔려간다. 진짜 그냥 어린이가 팔려가는 것이다. 올리버를 맡은 장의사 부부 중 남편은 그나마 올리버를 동정하지만, 그 외에 아내와 장의사에서 일하는 사람 - 그들도 미성년이다 - 은 올리버를 고아에 뭐에 하면서 구박하기 일쑤다. 굶기고 때린다. 견디기가 힘들다. 그래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또 만난 건 유대인 악당 페이긴 일당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소매치기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히게 되는데 놀라운 건 어린이라고 해서 정상을 참작한다던지 최소한 피의자가 미성년자이므로 주의 깊게 사건의 전말을 확인한다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를 바로 즉시 즉결심판에 회부하는 것이었다. 아니 부모도 없이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했다고 해서 바로 즉결심판을 통해 형을 살린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은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디킨스는 이런 장면들을 묘사하면서 올리버로 대표되는 계층의 희망 없는 삶의 현실을 역설하고 "너네 같은 부자들이 이런 사람들의 아픔을 아니?"라는 정도는 주장하기는 하지만, 맹렬하고 논리적인 사회제도 비판을 한다던가 개선책을 제시한다던가 하는 데는 소극적인 것 같았다. 만일 그 시대에 아동노동이 문제 되기는 했지만 만약 그에 따른 대가가 지급되었다고 한다면 디킨스는 어떤 말을 했을 것인가? 급여만 제대로 주어지면 아동노동은 괜찮다고 했을까. 아니면 아동노동 자체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21세기인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아동노동. 그러나 디킨스가 살던 시대에는 찬반 논쟁이 있었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 공교육의 개념조차 없어서 가난한 사람은 배울 수도 없었던 그 시대. 어느 시대나 사회나 명암은 있다지만 이건 아니지.   


2.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 약자에 대한 차별 


  이 작품에서 악역은 "유대인 페이긴"이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악당의 기운이 넘쳐난다. 이교도라는 뜻의 "pagan"이란 단어가 바로 연상된다. 유대인이면서 장물아비, 소매치기 두목, 창녀 포주, 사기에 각종 범죄 교사까지. 올리버에 대한 범죄가 빌미가 되어 결국에는 사형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역자는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이 유대인을 바라보는 미신적인 편견을 디킨스가 이용해서 페이긴이라는 인물을 만들었지만, 여느 그 당시 영국인들처럼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은 전혀 없던 시대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도 그의 저서 "공리주의"와 "자유론"을 통해 자유와 사회 공리의 조화를 윤리적으로 주장했지만 그도 그 시대를 살던 사람일 뿐이었던지 왕정을 옹호했고, 자신이 속해있는 상류층이자 식자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미국의 노예제도는 비난할 줄 알았지만 자신이 일하던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식민지로 수탈하던 것에 대해서는... 시대의 한계라고 해야 하려나. 


  인종차별의 역사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유서 깊은 것으로서 성경에 유다가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겼다는 신화적인 근원에서 유대인 차별이 시작되었고, 중세를 지나 근세까지 서양을 지배해온 크리스트교의 교리상 빛(밝음, 생명, 천국)은 선함, 어두움(죽음, 악마, 지옥)은 악하다는 이미지를 고착시켜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이교도로 배척한 데다가 셰익스피어도 "오셀로"에서 무어인 오셀로를 마누라를 죽이는 악한으로 등장시켰고, 각종 소설에서도 인디언을 비롯한 유색인을 악역으로 등장시켜서 사람들의 인종차별 의식을 별 고민 없이 증가시킨 역사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다문화 가족의 증가로 외국인들의 비중이 늘어가는 마당인데 이에 대한 차별 방지책은 도입 단계에 있으니 큰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법으로라도 차별을 제재하고 있지만, 디킨스가 살던 그 시대에는 그런 법도 없었으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을 얼마나 대놓고 했을 것인지. 그런 차별에 희생되는 것이 일상화된 계층들은 인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 


3. 혁명의 난폭함 


  이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디킨스의 작품 중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배경이 되는 시대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런던과 파리이다. 지금에야 우리들은 혁명을 뭐 그저 좀 뜯어고치고나 뭔가를 확 바꾸는 정도의 것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혁명의 역사를 보면 인명살상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걸 알 수 있다. 말 한마디 잘 못하면 반동으로 몰려 목이 날아가던 시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에 휘둘려서 왕마저도 목을 잘라버렸던 시대. 그 시대에서 살았던 중류층 이하의 계층은 오히려 상류층보다 역사적 사상적 격랑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가 나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나가던 시대. 혁명의 뜻은 숭고했지만 그 과정은 피를 불렀던 시대. 목숨이 파리 목숨이던 시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4. 구원하는 것은 결국 귀족 


  디킨스의 작품들에서 여러 인간 유형들이 등장해서 그가 살던 시대의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생은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주기는 하지만, 결국 올리버를 비롯한 중류층 이하의 계층을 구원하는 건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이다. 하류층인 주인공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되는 이야기는 없다. 디킨스 스스로도 아마 민중들이 스스로 깨우쳐서 세상을 뒤집을 능력을 갖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지난 시절이 요즘보다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 가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이라지만, 자신들이 살던 시대보다 50년 100년만 더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 이 시대와는 모든 것이 달랐던 그 시대가 있었는데 분명히 아주 느린 속도에 이런저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세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조금씩 티도 잘 안나게 변하고 있기는 하다. 당연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혜택은 이 작품과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이 좋았지" 하면서 과거로만 눈을 돌리고 현재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미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에 태어나서 희생되는 사람으로 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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