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woluck Oct 12. 2020

숨 막힐듯한 꽉 찬 설정은 없지만...

별을 위한 시간 (로버트 A. 하인라인,아작)

내가 SF를 처음 접한 건 국민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80년대 후반. 금성출판사에서 출간한 "공상과학소설전집" 32권 세트를 구입했다. 거기에는 SF의 고전 격에 속하는 여러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해저 2만리, 우주전쟁, 괴기 식물 트리피트, 화성의 공주, 펠루시다, 타임 패트롤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었고, 일본어판을 중역하고 편집을 한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SF를 읽고 있으면 정말 외계인은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연이어 일어났던 기억과 알 수 없는 존재가 우주로부터 내려와서 우리를 몰살시키는 건 아닌가 하면서 무서웠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앞서 말한 일련의 작품들이 원전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하고 있으니 그만큼 독자층이 넓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SF의 유니크함은 작가들의 거침없는 상상력의 폭을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데 있다. 지구인과 외계인이 서로 은하 단위로 치고받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부터,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하는 아서 클라크가 대표적인 장르도 있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관을 기본으로 해서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로 주제를 말하는 작품까지 SF 외의 다른 서사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아주 귀가 따갑도록 들은 얘기겠지만 과거의 SF작가들이 그들 기준으로 미래 - 그 미래는 우리에게 현재가 되었다. - 의 과학발전을 예상해서 자신의 작품들에 펼쳐놓은 점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다만 장르적인 특성상 특히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에 살던 작가들이 미래를 예상해서 잡아놓은 구성이나 설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참신함이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미래를 향해 흘러갈수록 작가들이 예상한 미래기술은 지금의 우리가 봤을 때는 이미 생활에서 사용되는 기술이 되었거나 그시대 작가들이 사용했던 기기들이 미래에도 사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어떤 SF적인 설정이 치밀한 작품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쌍둥이 패러독스"와 "양자역학의 동시성의 원리"를 토대로 한 설정이 돋보이기는 한다. "태양계의 행성들에 인간을 보낼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구. 그러나 지구보다 훨씬 척박한 환경을 가진 태양계 행성 대신에 광속으로도 몇십 년 이상이 걸리는 거리에 떨어진 지구와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행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탐사선을 12기 발사할 계획이 수립되고 광속으로도 몇 년이 걸리는 통신 문제 해결을 위해 텔레파시가 잘 통하는 쌍둥이들을 그 계획에 투입시킨다." 텔레파시는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더라도 당사자끼리 즉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그런 설정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르므로 생긴다는 "쌍둥이의 역설"이 이 소설을 풀어가는 제일 중요한 설정이다. "나"는 우주선에서 광속에 가깝게 비행하므로 지구에 있는 "내 쌍둥이" 보다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게 되며 지구에서 1백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다 해도 나에게 흐르는 시간은 약 4~5년 정도. 따라서 우주선에 탑승한 쌍둥이들은 지구의 쌍둥이들과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나 그 외 쌍둥이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는다던가 수십 년이 걸리는 우주선 내에서의 생활에서 정신병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은 것으로 작가는 설정을 했다. 그 시간차에 대해서 주인공들은 잠깐, 그저 잠깐 고뇌하다가 우주선 내의 정신과 의사의 상담으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주 쉽게.

주인공이 속한 탐사대가 외계행성을 탐사하는 내용 - 사실 나는 이런 내용에 조금 더 기대를 했다. - 은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 분량이 적다. 탐사과정에서 200명의 대원이 30명으로 줄어드는 과정도 단순히 서술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이 작품이 치밀한 설정의 SF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다 그 차이가 벌어져서 아주 다른 세대로 뚝 떨어져 버린 개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대차이에 대한 서술도 그렇게 깊지는 않다.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구로 귀환한다. 그러나 100년 후의 세계에 대한 묘사나 주인공이 겪을 공황상태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작가의 의도는 해피엔딩이었으니까.

하인라인의 작품이 미래를 예언한다던지 앞으로 일어날 사회에 대한 세계관을 제시한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기술상 한계를 소설에서도 드러내기도 했다. 광속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우주선과 지구 간에 종이로 보고서가 왔다 갔다 하고, 광속 우주선에 행성 직접 탐사용으로서 소형 우주선이 아니라 손수 조종을 해야 하는 헬리콥터가 실려있고, 우주선 내부 공간을 움직이는데 문을 직접 열고 닫는 등 현재 우리가 SF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모습과 비교하면 한계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에 의해 끝이 정해진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