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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UX Writing Jul 28. 2023

어느 날 신입 사원이 UX라이팅 정의와 범위를 물었다.

과연 쓸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거 같아 비겁하지만  현문우답으로..

벌써 7년이나 됐다. UX라이팅이란 키워드에 속한 관계자로 살아온 세월이.

오래됐다면 된 것도 같은데, 엄두가 안 나는 주제다.

아, 나는 어쩌다 이 엄청난 주제를 안고 백지공포에 떨고 있나 싶다.


주변에서 나에게 책을 쓰라는 권유가 이상기후 버프 받은 장마철 비처럼 쏟아질 때도 나는 전통에 빛나는 멘트로 방어해 왔거늘.


??: 왜 책 안 쓰세요?!

나: 시간이 없어요..


가드를 뚫고 명치에 마감을 꽂은 사람은 ‘신입 사원’님이다.


나: 우리 브런치에 글을 써봅시다. 매주 무엇이든 써볼게요. 같이 써보죠!

신입: 네 좋아요!

나: 뭘 쓰면 좋을까요?

신입: UX라이팅의 정의와 범위가 궁금해요!

나: …?!


대충 이런 흐름의 대화였다.


UX라이팅에 대한 정의를 다룬 글을 이미 브런치에 올렸었다.

'문제 지표를 해결하는 글쓰기'라고 정의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아무리 정성적인 영역이라도 지표로 증명이 가능하다. 글 역시 그렇다.

 

하지만, 저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지금은 뭔가 많이 달라졌다.

'뭔가'를 이번 글에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다.


시간이 갈수록 선언적으로 UX라이팅을 멋지게 정의하는 것은 힘겹기만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인적인 경험 중심으로 편하게 써보려 한다.


"UX라이팅"

이 말은 어디서 돌출했는가?

여기서부터 써보려 한다. (T.M.I모드 ON)


2015년, 포르쉐 고객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크리스토포러스>라는 잡지의 한국판을 만들 때였다. 해외에서 받은 기사가 대부분이었기에 번역투와의 싸움이었다. 문장 구조, 번역가 특유의 글쓰기 습관, 추상적인 표현 등. 고칠 게 많았다. 이때 글을 편집하는 방향성을 “어떻게든 읽기 쉽게 쓰자”로 잡고 작업했다. 쉬운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점이 아닐까 싶다. 이때까지 UX라이팅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UX 개념도 희미한 때였다.


추상적이지만, 나름대로 기준 삼아 콘텐츠도 만들고 번역투와 싸우다 보니 2017년이 됐다. 그리곤 LG U+라는 곳에서 고객언어혁신팀을 만든다며 연락이 왔다. 통신 용어가 어려우니 고객이 보는 모든 글을 쉽게 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UX라이팅을 고객언어라고 불렀던 셈이다.


앱, 메시지, 포스터, 제안서, 홈페이지 등등. 고객이 보는 글이란 글은 모두 고치는 일이었다. 이때 우리가 하던 일을 ‘쉬운 글쓰기’라고 불렀다. 고객언어를 다루는 작가가 고객언어로 쉽게 쓰는 것이 UX라이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테크니컬 라이팅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지만, 테크니컬 라이팅은 설명서를 쓰는 것과 기술 문서를 작성하는 영역을 부르는 단어였다. 지금도 그렇다.


난 쉬움이란 방향성에 상당한 의미를 뒀다. 그동안 모셨던 편집장, 글쓰기 책, 선배들의 조언에 항상 녹아있는 ‘쉬운 글’이란 키워드. 한글의 배경, <뿌리 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 선생의 의지 등. 머리에 박혀 있던 생각들과 버무려지며 매력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영어 없는 패션 기사, 전문 용어 없는 자동차 기사 같은 것들을 추구했던 것을 보면 개연성 없는 선택은 아니었던 거 같다.


2018년 SK텔레콤에서 ‘고객언어 연구소’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하는 일은 똑같았다. 뭔가 판이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글을 쉽게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을 제대로 하는 회사가 있을 거 같아 열심히 찾아봤다. 잡지사, 신문사, 출판사 등등.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쉬운 글쓰기의 형태와 조금씩 달랐다.


생각하는 일을 하는 회사가 없어, 고민 끝에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읽기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1,000자를 읽고 이해할 때 들어가는 평균 시간이 2분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회사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이분이란 이름에 이해하기 쉬운 짧은 글쓰기의 가치를 높게 생각한다는 뜻을 담았다.


다음으로 내린 결정은 아직은 없는 고객을 정의하는 일이었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일상에 필요한 정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의 글부터 바꾸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런 곳은 회사였고, 회사 중에서도 전문 업계 회사의 글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금융, 법, 의료 등. 꼭 필요한 정보를 엄청 어렵게 쓰니까.


이제 회사 종류를 고르면 끝이었다. 회사의 글을 바꾼다는 것은 회사와 계약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법인 회사여야 계약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법인 안에서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유한회사, 주식회사 등.


회사 종류와 함께 고민했던 부분이 회사는 많은데 언제 가서 글을 다 고칠까였다. (고객도 없으면서 말이다...) 몇 개월, 몇 년을 써도 10개 회사도 힘들어 보였다. 4차 산업혁명이란 휘황찬란한 단어가 선거철 정치인 포스터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던 때였다. 당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글을 이해하기 쉽게 바꿔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견적을 알아봤다. 견적 자체가 힘들었고 한 개발자에게 50억 써서 10년 정도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UX라이팅 에디터 '쉽게'의 초기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도 UX라이팅이란 단어는 아직도 등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는 중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를 돌려서 한 거 같은데... 그때는 믿었다. 아무래도 투자를 받을 상황이 오겠거니 하며 주식회사로 만들었다. 쉬운 글쓰기를 하는 자본금 20만 원짜리 1인 법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첫 해에는 소소한 일만 들어왔다. 블로그, 페이스북 콘텐츠 등등. 2019년 여름이 되어서야 첫 고객을 맞이했다.


첫 고객은 토스였다. 첫 미팅에서 이승건 대표와 라운지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썼던 단어도 ‘테크니컬 라이팅’이었다. 적합한 단어가 없어 ‘테크니컬 라이팅’에 기생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자등록증에도 테크니컬 라이팅, 계약서에도 테크니컬 라이팅. 본격적으로 토스 구성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한 분이 다가와 말했다.


A: 이런 걸 UX라이팅이라고 한대요.

나: 예? 아, 네네.


속으로는 '뭔 라이팅?' 이러면서 자리로 돌아와 폭풍 검색을 했다. 2017년 구글 I/O에서 등장한 단어였다.

사용자 경험 글쓰기? 쉬운 글쓰기를 앱에서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뭔가 이름이 생긴 거 같아 좋았다.


"그래 그럼 지금 하는 글쓰기를 UX라이팅이라고 부르지 뭐."


이름이 알게 된 기억상실증 걸린 드라마 주인공처럼 좋지만 얼떨떨한 상태로 UX라이팅이란 단어를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토스 프로젝트와 토스 증권 강의까지 끝내고 돌아와 홈페이지에 UX라이팅 전문회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우리나라 첫 UX라이팅 전문 회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UX라이팅과 UX라이터를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찾아왔다. 이 일을 같이 할 팀원을 찾는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채용공고 말이다. 과거 채용 공고를 오랜만에 찾아봤다. 2019년 채용 공고다.




(주)이분에서 함께 일하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정보는 알아들을 수 있어야 정보의 가치가 생깁니다. 쉬운 글쓰기 가치를 높게 생각합니다. 이분이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전문 지식을 어떻게든 쉽게 씁니다.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기업에서 나오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어려운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IT, 금융, 법률, 의학, 통신 등. 전문 업계에 있는 회사의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누군가에게는 해볼 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일은 클라이언트잡이지만, 우리 글은 클라이언트의 고객만을 향해 있습니다.


일 이야기를 짧게 하면. 전문용어를 풀어내거나, 대체할 말을 찾거나, 개념을 새로 짜거나, 정의를 내리거나, 글쓰기 규칙을 정하거나, 글보다는 영상이 좋겠다 싶어 구성하거나, 글보다는 그림을 그려 넣어야겠다 싶어 디자이너와 회의를 하거나, 공부하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정보가 진짜 정보가 되려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분의 생각에 공감하신다면 메일 주세요. 이력서와 지금까지 쓴 글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아래 내용도 참고해 주세요.


담당업무

-파트너사 테크니컬 라이팅, UX라이팅 담당


자격요건

-쉬운 정보 전달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시는 분

-빠른 학습 능력

-능숙한 스케줄 관리

-철저한 마감 개념

-논리적인 토론 능력

-교정 교열 능숙자


우대조건

-교정교열 능숙자

-S/W 개발 경력 또는 경험

-신문 기자, 잡지 기자 경력




제목은 ‘테크니컬 라이터, UX라이터 채용 공고’다. 어떻게든 쉽게 쓴다는 말이 지금 보니 참 무모해 보인다.

쉽게가 고도화될수록 이분 내부 UX라이팅과 UX라이터의 정의는 문장 규칙 설계로 초점이 맞춰졌다.


처음에는 UX라이터의 역할에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지금은 데이터 구축 단계는 언어학을 전공한 데이터 전담 팀이 담당하고 있다. 지금 이분에는 3개 팀이 쉽게를 만들고 있다. 팀 읽히게, 팀 정확하게, 팀 편하게.


팀 읽히게는 UX라이터들이 속한 팀이다. 고객사 이미지에 맞는 글쓰기 스타일을 설계한다. 외에도 읽는 경험을 해치는 문장 요소를 선정하는 '금지어' 작업을 주도한다.(고객사 몇몇 곳에서 잡초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AB테스트를 할 수 있는 고객사는 위닝 데이터를 모아 글쓰기 스타일을 만들기도 한다.(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팀 정확하게는 언어학을 전공한 데이터 전문가들이 모인 팀이다. 설계한 금지어가 문장에 들어가는 무수한 경우의 수 중에서 고객사 방향성과 UX라이터의 설계에 맞는 데이터셋을 구축한다. 고객사가 원하는 스타일을 데이터로 구축하는 것이다.


팀 편하게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함께 일 하는 팀이다. UX라이팅에 필요한 각종 기능, 언어모델 튜닝, 형태소 분석기 개발 등을 담당한다. 모든 기능이 글을 쓰는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목표가 담긴 팀명이다.  


UX라이팅도 결국 글쓰기다. 지킬 것, 고민할 것, 생각할 것이 많은 글쓰기. 그래서 정작 읽는 경험을 놓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지켜야 하는 규칙은 대신 기억해 주고,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정리해 주석으로 보여주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에디터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빗발치는 문서 가이드 제작 요청에 못 이겨, 아예 무료 템플릿을 만들어 쉽게에 업데이트하기로 결정했다. 9월에 업데이트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UX라이팅을 처음 시작하는 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긴 글을 두서없이 편하게 써봤다. 신입사원의 질문으로 시작해 홍보로 끝나는 망측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참, 유이님. 그러니까 UX라이팅의 정의와 범위는요...

다음에...미안..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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