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엄마가 많이 편찮으셔. 입원했다가 지난 주말에 퇴원했는데 여전히 안 좋다.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마침 출발이 다음 날이라, 싸둔 짐에 빠진 것은 없는지 점검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내가 멀리 있다고 해도 그렇지, 왜 이제야 알리는 거지?‘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탓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공연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운 없는 엄마가 식사까지 못하는 것이 위태로워 입원을 시켰다고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따라서 치료 방법도 없으니 며칠 만에 퇴원을 했다.
엄마는 여전히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치아가 없어서 잘 먹지 못해서 그렇지만,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손사래를 치는 식욕부진이 더 문제였다.
우리 엄마는 올해 구십팔 세.
아버지와 두 분이서 산다.
아픈 데가 많아서 한 번에 약을 한 주먹씩은 먹는다.
닳아서 없어진 무릎 관절 때문에 다리가 아파서 집 안에서도 지팡이 없이는 다니지 못한다.
틀니를 할 시기를 놓쳐서 몇 년 전부터는 잇몸으로만 먹는다.
밥과 죽의 중간쯤으로 질게 한 밥과 씹을 필요 없는 국물류. 이게 엄마의 주된 식사다.
그렇게 된 다음부터 엄마는 더 빠르게 쇠약해졌다.
도착한 다음 날 엄마한테 갔다.
4월 말인데 덥지도 않은지 엄마는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플리스 재질의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려 덮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나의 기척에도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언제나처럼 아버지가 큰소리로 ”이 봐요, 애들 왔어요” 하며 이불을 들추는 시늉을 하자 마지못해 눈을 떴고, “아이구구” 소리를 몇 번이고 내면서 한참 걸려 일어나 앉았다.
은색 곱슬머리는 자르지 못해 길게 자랐고, 그나마 손질을 하지 않아서 쑥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얼굴은 푸석하고 어두워 보였다.
힘이 드는지 얼마간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웠고, 한참 후에 “엄마, 식사하셔야지 “ 하는 소리에는 ”밥? “하고 확인을 했다. 그러더니 마치 밥투정하는 아이처럼 ”싫어. 나 밥 안 먹어 “라며 도리질을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온다.
식사도 거동도 스스로 하기 어려운 엄마를 보살펴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이*영 보호사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은 깔끔하고 부지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엄마를 돌봤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정해진 날짜에 목욕을 시켰고, 정갈한 집밥상을 차렸으며, 몇 개 안 되는 빨래들은 손으로 빨아 널었다가 걷어 꼭꼭 각을 잡아 개어 정리해 두었다.
태도는 한결같이 부드럽고 친절했다.
‘이ㅇㅇ 보호사가 그만둔다고 한다’며 아버지가 귀띔해 주었다.
요양보호사가 차마 엄마한테는 말을 못 하고 며칠 전 아버지한테만 알렸다고 한다.
살뜰히 엄마를 보살펴주던 분이 더 이상 못 온다는 사실은 나 말고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사 남매 모두에게 걱정스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엄마가 받을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날은 엄마가 유난히 정신이 좋았다.
아버지도 집에 계셨고 이*영 보호사도, 나도, 언니도 있었다.
이윽고 새로 오기로 한 요양보호사가 사회복지사와 함께 왔다.
한적하던 집에 여러 사람이 시차를 두고 들이닥치자 엄마는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거실에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그중에서 아는 사람은 호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로 올 요양보호사가 낯설었는지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이렇게 물었다.
“저 이는 누구여?”
결국 엄마는 정들었던 요양보호사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건 아니잖아.”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고 어르신, 이번에 남편이 퇴직을 했거든요,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됐어요. 죄송해서 말씀을 못 드렸어요. “
사실 죄송할 일도 아닌데,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이*영 보호사가 말했다.
보통 어르신들이 익숙해진 보호사와 헤어지는 것을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우리 엄마 또한 그럴 것을 잘 알기에 끝내 말 못 했던 그분의 고충이 느껴졌다.
“나한테 먼저 말을 했어야지. “
놀라우리만큼 똑 부러지게 다시 말했다.
그럴 때 엄마는 기운 없이 누워만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의 일이니, 누구보다 당신이 먼저 알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틀리지 않다.
왠지 이 모든 것이 엄마의 절규라고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나한테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사람 참 좋은데…”
풀 죽어 힘이 없고 떨리기까지 하는 목소리이다.
엄마의 이별은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