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십팔 세 <2. 나쁜 일은 새벽에 일어난다>

by 지우



이별을 준비하는 일중 하나이기라도 하듯 이*영 보호사는 전날 엄마를 깨끗이 목욕시켰고, 그래서 엄마의 모습은 유난히 깔끔했다.

전에 내가 사다 준 연하늘색 라운드 넥 니트 카디건의 단추를 끝까지 채워 입은 백발의 엄마.

어떤 배경에 데려다 놓아도 눈부시게 빛날 것 같이 이뻤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영 보호사는 두 분 식사 잘하고 부디 건강하시라는 당부 같은 인사를 했다.

우리 부모님도 고향 가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축원해 주었다.

자식인 우리들보다 더 살뜰하게 엄마를 보살펴준 그분이 너무 고마워서 언니와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렸다. 나중에 만나게 된 오빠들도 구십 도로 허리 숙여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마음의 선물을 준비해서 전했지만 받은 온정과 친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뜻하지 않게 엄마와 요양보호사와의 이별식이 되어버린 그날의 느낌은 왠지 서글프고 쓸쓸하다.

절대 잊지 못할 한 사건의 전조 같아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엄마는 평소 소파에 앉아 스툴 위에 쟁반을 두고 식사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을 편해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은 보통때와는 다르게 식탁 앞에 앉아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해서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껍질을 깐 씨 없는 포도 몇 알은 후식이었다.

그날따라 식사도 잘했고, 저렇게 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오래 앉아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우리를 바라봤다.

끝내고 나서 언니와 나는 엄마한테 질문을 퍼부었다.

이름하여 인지훈련. 사라져 가는 기억을 하나라도 붙들어둬야 했다.

“엄마 몇 살이지? “

하면 엄마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마치 면접관의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때 내가 “구우 십“ 하자 엄마가 따라서 “구우 십”했고, 이어서 언니가 “파아알”하자 또 “파알”했다.

“그래서 몇 살이라고요? “ 하고 다시 물어보면 엄마는 “구십 파알“ 했다.

“엄마 큰 손자 이름이 뭐였더라? “

평소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는 큰 손자 이름마저 단번에 생각해내지 못한다.

눈에 힘을 주며 기억을 소환할라치면 우리는 장난스럽게 힌트를 줬고, 엄마는 기어이 생각해 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 남매에게 각각 몇 명의 아이들이 있는지를 맞췄고, 이름도 모두 말했다.

언니와 나는 “맞아!”, “아이고! 우리 엄마 잘하네” 같은 추임새를 곁들여 가며 박수를 쳤다.

형부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처럼 귀여웠다.

그런 엄마랑 노는 건 언제나 재미있었다. 참기름보다 더 고소했다.

우리는 아홉 시쯤 저녁 약을 들게 하고, 잠자리를 봐주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새로 오는 보호사가 전의 분처럼 좋은 분이었으면 하는 기원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서.


그리고…

다음 날, 엄마의 낙상 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아버지는 무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어이쿠!”하는 엄마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소리가 난 곳으로 가니 엄마가 거실 복도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화장실에 간다는 것이 그만 그렇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일단 엄마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 작은 오빠한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오빠는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살고 있고,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왔다고 한다.


정든 보호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이 컸나.

저녁에 우리랑 보낸 다소 긴 시간이 무리가 됐나.

최근에 화장실로 가는 거실벽에 안전바를 설치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엄마가 굳이 거실 화장실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넘어지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넘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전날 저녁 엄마의 모습이 너무 곱고 차분했다.

함함하게 빗질한 은색 머리가, 엄마의 흰 피부와 너무나 잘 어울리던 하늘색 스웨터가 그랬다. 우리 질문에 답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랬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