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경기도 소재 한 병원에 입원했다.
부모님 집과도 가까운 편이고, 오빠 집에서는 더 가까웠다.
엄마를 태우고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수속을 밟고 병실 배정을 받아 침대에 눕힐 때까지의 그 시간이 오빠는 그저 길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수술하지 않으면 3주에서 한 달 후 사망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담당의사의 설명도 충격이었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백 세를 앞두고 있는 고령의 엄마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또한 두려웠다고 한다.
고맙게도 담당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해주겠다고 했고, 어찌 됐든 수술을 해야만 엄마가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것저것 따져볼 겨를 없이 오빠는 수술동의서 보호자 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러고 나자 각종 수술 전 검사가 신속하게 진행됐다.
엄마의 진단은 좌측 고관절 골절.
바깥쪽에 크게 금이 갔고 안쪽으로도 얇은 금이 간 상태였다.
뼛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어서 금속을 박아서 금 간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간헐적으로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진통제의 양은 늘어났다.
엄마의 통증도 통증이지만, 정상범위를 벗어난 심전도도 문제였다.
의료진은 심전도 수치가 좋아져야만 수술을 할 수 있다며, 약물을 쓰면서 추이를 보자고 했다.
수술할 때까지 금 간 뼈들이 틀어지지 않도록 2-3킬로에 달하는 무쇠추를 발목에 달았다.
골절로 인한 통증에, 추의 무게, 그것 때문에 24시간 똑바로 누워 꼼작 달싹할 수 없는 괴로움을 이겨내느라 엄마는 초주검이 되었다.
차마 보기 힘들었던 엄마의 고통. 어떤 위로도 빛을 잃었다.
나눌 수도, 덜 수도 없는 구십팔 세 노모의 고초를 고스란히 목도해야 하는 고문 같은 시간이었다.
외면할 수밖에 없는 내가 이 세상 제일 비겁한 겁쟁이 같았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엄마는 수술을 했다.
제발 무사히 수술이 끝나기를, 엄마가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
감사하게도 수술은 잘 되었고, 예후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강한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골절 부위가 두 군데나 되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수술하고 이틀 후 아침, 회진 시간이었다.
“선생님, 저희 엄마가 다시 걸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표정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럼요, 가능합니다. “
“네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뒤의 말이 들렸다.
“네, 아무래도 걸으려는 환자 자신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
의지, 의지라…
이것이 이렇게 엄중한 단어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