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정호승, 천양희, 함민복 시诗가 그리는 “어머니”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름만 들어도 뭉클해지고, “어머니”하고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라도 하면 목이 메어온다.
열 달 동안을 품었다가, 하늘이 노래지는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하며 이 세상에 내어 준 어머니. 잠을 쪼개자며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혹여 여린 살 짓무를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어가며 키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되고 펼쳐지는 그 길을 어머니는 안고, 업고, 손을 잡고 걸었다. 신작로든 진창길이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태풍이 휘몰아치는 길이라도.
박재삼 시인의 시 “어떤 귀로”. 생계를 위해 이른 새벽에 나갔다가 어두워진 다음에야 집에 돌아오던 어머니가 혼자 걸어왔을 밤길은 외롭고, 고단했을 것이다.
= 어떤 귀로 =
박재삼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어느 어머니인들 자식들 잘 먹이고 입히고 싶지 않을까. 살아도 살아도 살림은 피지 않고, 삶의 가파른 오르막이 숨이 턱에 차도록 힘겨웠을 것이다. 갚아지지 않는 빚, 정작 이 빚은 자기 목숨 같은 자식들이었다. 장사하느라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서야 돌아와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아 꼬질꼬질한 채로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진 어린 자식들을 보며, 그때까지도 다 팔지 못해 머리에 이고 온 물건들을 내려놓는 어머니. 어린 시인은 잠결에 달빛과 별빛이 비추어주는 지친 어머니 모습을 보았다.
= 걸레의 마음 =
정호승
내가 입다 버린 티셔츠를
어머니는 버리기 아깝다고 다시 주워
걸레로 쓰신다
(중략)
그렇게 걸레가 되고 나서부터는
누가 나더러 걸레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청소할 때마다
나를 걸레로 만드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한다
(중략)
평생 나를 위해 사셨던
어머니의 걸레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의 “걸레의 마음”을 읽을 때 애절한 감정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소가 지어졌다. 아들이 버린 티셔츠를 알뜰하게 걸레로 쓰던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도 친숙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소중한 아들일까. 그 아들이 입다 버린 셔츠마저 함부로 하지 않고 걸레로 쓰신 어머니. 시인은 걸레가 되어 ‘집 안 청소를 하고 변기도 닦고 베란다에 떨어진 새똥도 닦아낸다.‘ 그리고 자신을 걸레로 만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것을 세상에 대한 자기 사명의 하나로 삼은 것으로 이해된다.
= 활 =
천양희
활이 구부러져 있다
어머니 등이
구부러졌다
구부러져야 멀리
날아가는 활(活)
구부러진 활도
부러질 때가 있으니
마지막
어머니 등이 그러하였다
사람의 뒷모습은 정직하다. 꾸미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가장 진실한 모습은 뒷모습,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의 등이다. 어머니의 등, 자식을 업어 키우느라, 그렇게 키운 자식 걱정하느라 맘껏 펴본 적 없는 야윈 등. 야윈 등은 굽은 뼈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한다. 자식 먹여 살리는 일, 가족 돌보는 일 그 등이 휘어지도록 살아야(活)했던 어머니. 어머니의 등은 그래서 한없이 슬프다.
= 어머니에 대한 후회 =
정호승
누나
엄마가 오늘 밤을 넘기시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몇 시간은 더 계실 것 같아
봄을 기다리는 초저녁 여섯 시
(중략)
어머니가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중략)
갑자기 노트북 자판기에 커피를 쏟듯 마음이 쏟아져
지금 이 순간 혹시 엄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중략)
엄마 돌아가셨다
누나가 덤덤히 잘 갔다 왔느냐고 인사하듯 말한다
미안해요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해요 엄마
뺨을 비비며
어머니 임종을 지키려고 급히 다녀왔는데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영원히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봄을 기다리던 어두운 저녁 일곱 시
시인은 봄을 기다렸다. 어머니를 휠체어에라도 앉으시게 해 밖으로 나가 따스한 공기와 훈훈한 바람을 쐬게 하고, 앞다투어 피어나는 꽃을 보여드릴 수 없다고 해도,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시인은 급히 처리할 일을 위해 여든을 바라보는 누나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나서 잠시 외출한다. 일을 마치는 둥 마는 둥,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에 한 걸음에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막 떠나신 후였다. 저녁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단 한 시간, 어머니는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시인의 가슴은 갈가리 찢기는 듯 아팠을 것이다. 바로 앞에 계시던 어머니의 임종을 못한 자식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 마음을 시인은 오히려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봄도, 아들도 기다려주지 않은 어머니를 시인은 그렇게 애통해한다.
어머니가 연로해질수록 자식도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지만, 자신의 삶이 있으니 오롯이 어머니 곁에만 머물 수 없다. 보통 자식들은 그런 자신의 부족함이 뼈에 사무친다. 어머니라면 어떻게 해서든 자식 곁에 계셔줬을 텐데.
내가 엄마에게 가장 사무치는 일은 더 살가운 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 더 정답고 따스하게 “사랑한다”라고 자주 고백하지 못했다. 시시콜콜하고 수선스럽게라도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내 마음을 엄마가 모를까 봐, 얼마나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지 모르고 떠나실까 봐 조바심이 난다.
= 성선설 =
함민복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 시인의 “성선설”을 읽고, 전율했다. 이것이 우리 손가락이 아홉 개도 아니고 열한 개도 아닌, 바로 열 개인 단 하나의 이유인지 모른다!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에게 잉태되어,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머물다가 세상에 나온 우리 모두는 그 이유만으로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살면서 그 은혜를 모두 갚기는커녕, 오히려 상심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고 고생을 시키는 자식이라는, 우리를 어머니는 상처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대로 어머니는 자식들의 상처다. 시간이 가도 아물지 않고, 떠올리기만 해도, 남의 어머니 얘기만 들어도 쓰리고 아파지는 상처다. 그러나 아름다운 상처이다.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이 세상,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살아갈 힘이 생긴다. 나 스스로 아름다운 상처가 될 엄두를 내게 된다.
<엄마는 구십팔 세> 연재를 쉬어 가려고 합니다.
부족한 저의 마음과 글 읽어주시고, 라이킷도 해주시고, 따스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