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십팔 세 <18. 두 개의 비취반지>

by 지우




몇 해전, 나한테 한꺼번에 반지가 두 개씩이나 생겼다.

그것도 알이 큰 비취가 박혀있는 반지이다.

새로 산 것은 아니고, 엄마와 시어머니가 주신 것이다. 엄마가 주신 것은 호주산 비취반지였고, 어머니한테 받은 반지 비취의 산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비취였다. 두 어머니가 나에게 반지를 주신 시기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분의 의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

인생, 삶의 정리.

몇 개 되지도 않고, 크게 값도 나가는 것도 없는 당신들의 패물을 자식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머니들에게는 그런 의미였다.


엄마는 본래 패물이 많지 않다. 옛날 아버지가 사다 준 보라색 알반지를 즐겨 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같은 값나가는 보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14K도 18K도 아닌 백금에 감싸인 알은 준보석 족보에나 오를 수 있으려나. 이름도 알 수 없는 알을 품고 있는 그 반지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기품이 있었다. 끼면 예쁘다며 엄마는 유난히 그 반지를 아꼈다.

엄마의 다른 반지는 비취 알 반지였다. 호주에서 수입해 온 것인지, 흔히 호주 비취라고 부르는 알은 불투명하고 선명한 여린 녹색이었다.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까, 맞다! 사진에서 본 햇빛 좋은 날 캐나다 루이스 호수의 물빛, 바로 그 색이다. 석회질을 함유한 호수의 물이 밝은 태양과 만나 빚어내는 독특한 에메랄드빛.

알을 감싸는 반지판은 14K로, 아무 장식 없이 세 줄의 요철문양만을 내서 돌린 간결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이 났다. 언니와 함께 엄마한테 간 날, 엄마는 너희들 오기를 별렀다는 듯이 몇 개 들어있지도 않은 패물지갑을 가져왔다. 각자 맘에 드는 걸 골라보라고 했고, 언니가 먼저 반지를 끼어봤지만 언니한테는 작았다. 그런데 내 손 중지에는 잰 것처럼 마침맞았다. 늘이거나 줄일 것도 없었다. 반지와 목걸이 중 목걸이는 언니가 갖고, 반지는 나에게로 왔다. 반지의 주인은 내가 되었다.

엄마가 준 비취반지를 끼고 몇 번 외출을 하기는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올드한 반지가 어디서 났냐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엄마가 주신 것”이라고 하면 다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 되었다. 알의 크기도 디자인도 해묵어 보이기는 했다. 남편도 왠 “할머니 반지”를 꼈냐고 했으니까.


시어머니가 주신 반지에 올려진 비취는 투명하지만 색은 어두운 초록색이다. 작은 직사각형 큐빅을 알 주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돌려 박고, 알 판을 정직하게 두지 않고 비행접시처럼 굴린 특색 있는 디자인이었다. 어머니는 이 반지를 늘 끼고 계셨는데, 그래서인지 생활의 흔적이 눈에 띈다. 큐빅은 불투명한 흰색으로 변해버렸고, 그 사이사이 이물질이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엄마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디자인으로 알이 조금 작은 비취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가 세트 구성이었다. 목걸이는 형님이 가져갔고, 나한테는 또 반지가 왔다. 어머니의 반지는 나한테 크다. 왼쪽 오른쪽 중지에 아무리 옮겨가며 껴보아도, 어느 손가락에서건 반지가 헛돈다. 줄일 기회가 없어서 아직 제대로 못 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반지를 화장대 위 뚜껑 달린 정리함 안에 보관한다.

한 때는 원래 주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사랑과 관심을 받기도 했을 반지들은 그저 조용히 그 시간들을 반추하고 있을 뿐, 엄마의 손가락에 머물렀을 호주 비취반지는 그것대로, 시어머니의 비취반지는 또 그대로 어머니들과 함께 한 시간을 품은 채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유행 지나고 노티 나는 데다, 스크레치도 나고 묵은 때도 낀 반지들은 어머니들의 일생과 닮아 있다. 그래서 이 반지들을 보면 애처롭다. 여늬 반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평소에는 나마저도 이 반지들을 잊는다. 다른 물건을 꺼내려 정리함 뚜껑을 열 때에서야 비취반지가 거기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평소 장신구를 즐겨하지는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는 반지들. 이것들이 눈에 밟힐 때면 꺼내서 비누로 깨끗이 닦고, 말려서 넣는다. 언제 끼고 외출이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어보면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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