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십팔 세 <17. 나무수국의 선물>

by 지우




몇 년 전이었을까. 엄마가 그래도 거동은 할 수 있을 때였다.

가끔 엄마 아버지를 모시고 외식을 하러 갔다. 갈비찜이나 장어구이 같은 것도 곧잘 드시던 전과 달리, 엄마의 틀니마저 제기능을 못하게 되면서부터는 줄곧 메기매운탕만 먹으러 갔다. 부모님 집에서 차로 삼사십 여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전문식당으로, 이층으로 된 가정집의 일층을 식당으로 개조해서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손님은 많았다. 민물매운탕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러 번 들르다 보니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더 지나서는 단골이 되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빨리 들고 나지 못하는 우리 부모님을 귀찮아하지 않는 고마운 분이었다. 사장님도 부모님 생각이 난다면서 매운탕에 잡고기며, 미나리 혹은 수제비 같은 것을 조금씩 더 챙겨 주고는 했다. 메기의 연하면서도 탱글한 살을 발라 국물과 함께 그릇에 떠드리면 시원하다며 두 분 모두 잘 드셨다.


이 식당에서 이십여분 떨어진 곳에 언니가 알고 있다는 카페에도 가봤다. 그다음부터는 매운탕을 먹고 그곳으로 가서 취향대로 아메리카노, 라테,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음료를 시켜서 천천히 마시고 오는 것이 정해진 코스가 되었다. 카페는 정원이 넓었다. 설계에 따라 정성껏 심은 식물들이 철 따라 꽃을 피웠고, 건물 바깥 야외에도 좌석이 꽤 있어서 봄가을이면 거기 앉아서 차를 마시며 꽃과 날씨를 감상하고는 했다.

카페 정원에는 큰 나무수국도 있었다. 어느 해 봄에 갔을 때 마침 한창 꽃이 피었는데, 빽빽한 초록잎이 장벽처럼 무성했고, 군데군데 둥근 수국꽃 덩어리가 무게를 못 이겨 휘어져 쏟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잔뜩 달아놓은 흰색 장식용 볼 같았다. 엄마는 “아유, 저 꽃 좀 봐라. 크고 이쁘기도 하다” 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가 이렇게 꽃을 좋아하는구나. 가끔 지나가는 아기들을 보면서 “꽃이, 꽃이 무슨 꽃이 이보다 더 예쁠까!” 하던 말을 그대로 믿은 걸까. 엄마는 꽃보다 아기들을 더 좋아한다고. 돌아오는 길에 그보다 더 크고, 꽃송이도 많이 달린 나무수국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일부러 유턴을 하고 차를 세워 창문을 내리고 엄마한테 실컷 보시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나무 이름도 몰랐던 나는 그날 이후, 나무수국이라는 이름을 알아냈고,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라는 영예를 그 나무에 걸어주었다. 이후 이 꽃을 보면서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 날은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상황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잘 못 해 드리고 그래서 아쉬웠던 일만 생각나는 것이 사람의 정이다. 나의 경우에는 늘 약하고 안쓰럽기만 했던 엄마라서 더 그렇다. 그때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 엄마도 여행을 하고 싶었을 텐데, 모시고 좀 더 자주 나갈걸…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매운탕이라도 자주 사드릴 걸, 지금은 드시지도 못하는데라고 하면서 자책했다. 엄마가 원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면 마음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멈춰서,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난 봄날,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어쩌면 엄마 자신도 그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지도 모를, 같이 보았다는 것, 따스한 날씨였고 핑크색 모자를 쓴 엄마와 새마을 지도자 같은 모자를 쓴 아버지를 꽃나무 아래 억지로 나란히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 두 분은 그리 다정스럽지 않게 각자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마치 동상이몽 같은 장면을 연출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늘 먹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신 것이 다였던 그저 그랬던 하루였지만, 같이 있었던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꽃나무를 들이지 않았을까. 자세히 보고, 다른 시각으로 찾다 보면 잊고 있던 그런 보석 같은 시간들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나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고 싶다. 못 해준 것, 미안한 것, 엄마가 고통스러웠을 일을 자꾸 끄집어내기보다, 그나마 내가 잘했던 것, 엄마를 기쁘게 했던 작은 일, 그 속에서 피어나던 엄마의 미소 하나씩이라도 기억해내려고 한다. 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질책하는 대신 사소하지만 나 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찾아내는 일이 내 삶을 환하게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