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지 만 4개월이다. 그새 뭘 하고 살았을까. 읽을 사람도 없는, 브런치에서는 극히 마이너한 글을 혼자 신나게 써제끼다가 소위 현타가 왔고, 마침 그 시기에 브런치 앱 업데이트에 신경이 곤두섰고, 운영자에게 몇번 어필했으나 과연 듣던대로 벽창호였고, 그러다 글 쓰는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넉달이라니, 시간이 그리 흘렀나? 늙어감의 징후가 뚜렷하다.
용접 이야기는 일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鐵)이야기_4를 올릴 때 포스팅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가 이런 저런 할 얘기가 많아 미뤄두었다. 그로부터 장장 9개월이 흘렀는데, 다시 맘먹고 쓰는 글의 시작으로 적당한 소재이리라.
용접(鎔接)은 영어 'welding'을 번역한 말이다. 메이지 유신 후 근대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수많은 서양 서적을 미친듯이 번역했다. 지금이야 번역이 문법만 알면 나 따위도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번역자들은 자국어에 없을 뿐더러 한자 문화권에는 개념 자체가 없는 용어를 두고 고심했다. 민주주의란 말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9세기 일본에서 democracy라는 단어를 접하고 당혹해하는 번역자를 상상해 보자. 할 수 없이 그들은 말을 만들어 냈다. 과학(science)이 그러하고 신경, 세포, 경제, 정부, 철학, 자유, 시민이 그렇게 만들어진 낱말이다. 번역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번역자들끼리의 다툼도 있어, 예를 들어 philosophy를 처음에는 궁리학(窮理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원뜻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번역을 무비판적으로 쓰다가 그대로 굳어진 용어도 있다. Anarchism을 번역한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가 그러한 예다.
용접이라는 용어를 개발한 번역자에서 경의를 표하기는 해야겠지만, 하필 녹일 용(鎔)자를 써서 후학들의 개념폭을 좁힌 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꼭 녹여 붙이지 않아도 welding이기 때문이다. 미국 용접협회(American Welding Society; AWS)의 정의를 보면 welding이란, "압력을 가하거나 가하지 않고, 용가재(filler metal)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적절한 온도로 가열하여 유착이 형성되는 금속 유착"이다.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의라 AWS의 훈련 매뉴얼을 다시 보면 welding이란, "결합될 금속 조각이 맞대어지고 충분히 높은 온도로 가열되어 연화 또는 용융 작용에 의해 하나의 조각으로 결합되는 것"이고 "압력이 가해질 수 있으며 용가재로 결합부를 채울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welding은 금속과 금속을 원자결합 수준으로 접합하는 과정(금속결합)이며 접합부에 열 또는 열과 압력을 가하면 이러한 금속결합을 이룰 수 있다. 읽은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매거진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 이야기 시리즈에서 말했듯 인류 최초의 철 가공법은 녹여 붓는 주조가 아니라 달구어 두드리는 단조였다. 고온 가열 기술을 얻기 전 고대 용광로에서는 쇳물이 아니라 불순물이 함유된 부스러기철이 생산되었고 그 부스러기들을 불에 달구어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서 철 덩어리를 만들었다. 야금이 그러하니 용접, 아니 welding도 두드리는 방법으로 못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 3_왕의 귀환]에서 리벤델의 엘프들이 부러진 검을 두드려 새 검으로 만드는 장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검의 이름은 나르실(Narsil)로서, 누메노르의 망명자이자 곤도르 왕국의 첫 왕인 엘렌딜이 사용하던 명검이다. 중간계 제2시대 모르도르 전투에서 사우론과 맞서던 엘렌딜이 쓰러지고 이 때 나르실이 부러지게 되는데, 엘렌딜의 아들 이실두르가 부러진 검을 휘둘러 사우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나르실은 부러진 채로 두네다인족의 보물로 전해졌고 일족이 쇠퇴한 뒤로는 리벤델의 엘프 군주 엘론드가 보관하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 원작에서 부러진 검이 처음 언급되는 것은 리벤델로 향하는 프로도 일행에게 보낸 간달프의 편지에서다. 호빗 일행과 우연히 만난 정체불명의 무사가 고귀한 신분임을 암시하고 있다.
황금이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듯
방랑하는 자가 모두 길을 잃은 건 아니라네.
강한 자는 나이를 먹어도 약해지지 않고
깊은 뿌리는 서리도 건드리지 못하네.
잿더미에서도 불이 솟아날 수 있고
그늘진 곳에서도 빛이 나올 수 있나니,
부러진 칼도 다시 새것이 되며
잃어버린 왕관도 다시 찾게 되리라.
영화판에서는 검이 부러지는 장면, 그리고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 곤도르 섭정의 아들 보로미르가 부러진 검을 건드리다 손을 베는 장면이 1편 [반지원정대]에 나오고, 3편 [왕의 귀환]에 이르러 검이 용접으로 다시 붙여져 엘렌딜의 후손 아라고른에게 주어진다. 엘론드가 로한의 막사에서 두건을 벗고 아라고른에게 검을 건네는 장면의 간지가 대단하다. 왕으로 귀환한 아라고른 2세는 다시 태어난 검을 안두릴(Anduril)로 명명하는데 엘프어로 '새벽의 불꽃'이라 한다.
나르실 복원은 영화에서 30초도 안되는 장면이지만 제작진은 나름 기술적 고증을 한듯하다. 일단 부러진 파편을 가열하여 맞댄 후 망치로 두드려 칼 형상대로 접합한 뒤(tack welding) 통째로 재가열하여 본격 단조를 한다. 그러하다! 구조물을 용접 제작하려면 첫째, 도면대로 부재를 조합하여 형상을 구성한 뒤(fabrication) 둘째, 점(tack) 용접으로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고 마지막으로 본용접을 실시한다.
이렇듯 금속을 녹지 않을 정도의 열만 가하고 힘을 가해 붙이는 접합을 압접(pressure welding)이라 한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인류가 개발한 최초의 용접법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공법이면서 현재에도 의외로 많이 쓰이는데, 가령 판금(板金) 용접이 그것이다. 박판은 일반적인 용융 용접법으로는 열에 의해 구멍만 뻥 뚫리기 십상이라 레이저로 국소 용융을 시키거나 전기 저항을 이용한 압접을 한다. 철제 책상 서랍을 빼 보면 점점이 찍어 누른듯한 용접 자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요즘 날씨면 벌써 거실에 나와 있을 선풍기 안전망을 보라. 수많은 살대가 테두리, 그리고 원형 보강재에 붙어있다. 이 살대들은 용접하기도 마땅치 않을 뿐더러 이 글의 맨 윗 사진의 강동원 씨처럼 하나 하나 용접한다면 선풍기 한대 제작에 수십만원이 들 것이다. 접촉 부위만 빙 둘러서 국부적으로 가열한 뒤 찍어 누르는 압접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파이프 제조에도 압접법이 쓰인다. 강관(steel tube or pipe)은 압출(extrusion) 혹은 인발(drawing)에 의해 처음부터 빨대 형상을 뽑아내는 비용접 강관(seamless pipe)도 있으나 제조 비용이 막대하여 고압용 파이프를 제외하면 대개는 용접강관(welded pipe)으로 제조한다. 길다란 철판을 오목한 롤러 사이로 통과시켜 연속으로 둥글게 말아 이음매를 용접하는 공법이다. 수도관을 비롯하여 우리가 보는 강관의 90% 이상이 용접강관이다. 이 용접강관의 용접은 녹여 붙이는 전기 아크용접(electric arc welding)법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저압용 파이프는 거의 다 전기저항으로 가열하여 롤러로 밀어붙여 접합하는 압접법(electric resistance welding; ERW)을 채택한다. 능률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이제 녹여 붙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접으로 넘어가 보자.
유명 입시학원 수학 강사가 유튜브 강의중에 공부 못하면 용접이나 배워야 한다고 발언하여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렇게 할 거면(공부 안할거면) 지이잉~ 용접 배워가지고 저기, 호주 가야돼."
용접공을 비하했다, 직업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졌다, 공부 좀 한 인간의 선민의식을 보여줬다 등등 강사를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했고 대한용접협회까지 비난 성명을 냈다. 기술학교에 다니는듯한 한 호주인은 "우리 기계공작 선생님 말씀인데, 공부 열심히 안하면 한국에 가서 영어강사 하게 될것"이라고 비꼬았다.
내가 보기에, 주예지 강사가 학생들에게 공부 외에도 다른 진로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 점은 높이 사야 한다. 그리고 선택 중의 하나로 용접공을 예시한 것은, 주 강사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매우 훌륭한 대안이다. 왜냐하면 용접은 잘만 배워두면 평생 밥 굶을 일 없는 아주 좋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금속을 다루는 한 용접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철구조물이 용접으로 만들어졌고 빌딩을 건설하거나 배를 짓거나 각종 설비를 만드는 일을 용접 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비록 기계 제작에 자동화가 많이 도입되고 소품종 대량생산에는 용접조차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으나 현장 용접(field welding), 예를들어 조선소에서 배 짓는 용접은 앞으로 수백년이 흘러도 절대로 기계로 대신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3D 직업이라 지원자가 적어 실력 있는 용접사는 큰절을 하며(물론 큰돈도 든다) 모셔가는 형편이다. 나도 공사관리 할 때 용접팀의 일원이 그만두려고 해 그가 사는 숙소까지 쫓아간 적이 있다.
주 강사의 생각에서 틀린 점은 용접을 공부보다 쉬울 것으로 본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수련 과정도 극악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용접공은 더운 여름에도 가죽옷으로 완전무장하는 고난을 겪으며 여러해 경력을 쌓아야 한다. 호주로 기술 이민 갈 정도의 용접사라면 적어도 10년 경력은 필요하리라. 원자력 주설비를 제작할 정도의 용접사라면 최소 경력 20년에 기능 뿐 아니라 이론까지 무장한 베테랑으로, 박사 따기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쉬운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사를 능가하는 고소득도 보장된다.
그러니, 강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공부 하세요. 공부만큼 쉬운게 없습니다."
녹여 붙이는 용융 용접에서 용접사가 녹이는 금속은 두가지다. 첫째는 붙이고자 하는 부재, 용접에서는 모재(母材; base metal)라 한다. 둘째는 서두에 얘기한 용가재(filler metal)로서 일반적으로 용접봉(welding rod or wire)이라 칭한다. 얇은 판의 경우 용접봉 없이 모재만 녹이기도 하는데 이를 제살용접(autogenous welding)이라 한다. 모재는 안녹이고 용접봉만 녹이는게 우리가 잘 아는 납땜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 외에는 모재와 용접봉을 동시에 녹여 모재+용접봉의 합금을 형성하며 용접봉으로 틈새(현장에서는 누구나 그루브groove라 한다.)를 메워가는 작업이 정통 용접이다. 용접을 실시하는 모재 표면으로부터 녹는 깊이, 즉 모재가 녹아 용접봉과 섞이는 깊이를 페네트레이션(penetration)이라 하는데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 현장에서 누구나 영어 용어를 쓴다. 어설픈 용접사가 페네트레이션을 얕게 하고 용접봉으로 그루브 메우기에 급급하면 용접 불량이 발생한다.
금속을 녹이기 위해서는 열원이 필요하다. 열원은 전기 아니면 가스(gas)다. 가스용접은 최고 3200℃까지 낼 수 있는 산소-아세틸렌(acethylene) 또는 그보다 온도는 낮지만(최고 2800℃ 내외) 가격이 저렴한 산소-프로판 가스를 사용한다.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 것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니 모재를 녹이는 용접법으로는 가장 먼저 역사에 등장한 방법이다. 가스통만 옮길 수 있으면 어디 가서도 용접을 할 수 있고 친환경이기도 하여 현장에서 사랑받을만도 한데, 아쉽게도 생산성과 작업 편의가 전기 용접에 비해 매우 불량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으며 지금이 아니라 내가 기계에 입문한 80년대 말에 이미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다. 현재 가스불로 용접하는 일은 현장 배관에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고 황동 용접봉을 녹여 얇은 부재를 접합하는 브레이징(brazing)에 쓰일 뿐이다. 산소-아세틸렌 혹은 산소-프로판 가스불의 현재의 용도는 99% 절단이다. 가스 압력을 조정하기에 따라 토치에서 불꽃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데, 이 불꽃으로 강재를 절단하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과거 노동쟁의 기사를 보면 농성장에 공권력을 투입할 때 산소용접기를 동원했다는 문구가 종종 있었다. 노동자들이 닫아 건 철문을 가스토치로 절단하고 쳐들어갔다는 뜻이다. 스테인리스처럼 산화가 잘 되지 않는 금속은 가스절단기도 듣지 않으니 농성에 참고할 일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봤는데 가스용접에 대해 오해하는 글이 종종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전기용접을 하면서 용접부에 불활성가스를 공급하는 용접법을 가스용접으로 착각하는 글들이다. 진짜 가스용접이 사장(死藏)된 상태라 생긴 오해일 것이다.
이제 드디어 여러분이 기다리는 전기용접이다.
전기용접은 전자의 아크(arc) 방전을 이용한 용접법이다. 아크 방전에 대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 이야기_4에서 설명했듯이 아주 높은 전압이 인가된 두 전극을 접근시켰을 때 전자가 공간을 가로질러 상대편 전극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이 때 발생하는 높은 열을 이용하는 것이 전기용접이며 아크용접(arc welding)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모재와 용접전극에 각각 +/- 전극을 물리고 용접전극을 모재에 근접시키면 아크 방전이 일어나고 모재가 녹는 것이다. 교류 전기의 경우 +/- 의미가 없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가스용접이 지하에 묻힌 이상 용접은 압접이 아니라면 그냥 모두 전기용접으로 생각해도 된다.
용접 전극은 소모성과 비소모성으로 나눌 수 있다. 소모성 전극은 용접봉을 전극으로 쓰는 것이다. 아크를 발생시키면서 스스로 녹는다. 맨 윗사진 강동원 씨가 하고있는 용접은 비소모성 전극을 사용하는 것이며 아크열로 모재 제살용접을 하거나 별도의 용접봉을 녹여야 한다. 한손에 용접전극, 한손에 용접봉을 잡고 한다. 어떤 경우에나 용접 전극을 모재에 근접시켜야 하며(용접법에 따라 다르지만 5mm 이내다.) 모재에 접촉시킨다면 전기는 아크를 발생시키지 않고 그냥 흘러버린다. 용접 작업하는 내내 그 간격을 유지해야 하므로 초보자는 곤욕을 치른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2주간 용접 실습을 한게 전부라 이후 어쩌다 한번씩 용접을 직접 하게 될 때는 온몸의 근육이 긴장된다. 하다가 용접봉이 모재에 붙어버리거나 용접봉이 너무 떨어져 실화(失火)되기 일쑤다.
원리상 간단하기 그지없는 전기 용접이지만 수많은 용접기와 공법, 용접봉이 개발되었고 지금도 개발중이다. 그 많은 용접법들은 용접이라는 공정이 숙명적으로 직면하는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기술과 아이디어를 쥐어짠 결과다. 가장 크면서 절대적인 취약점은 우리가 지구에 사는 바람에 피할 수 없는 현상, 바로 산화(酸化)다. 용접기로 모재와 용접봉을 녹이는 순간부터 공기중의 산소가 녹은 금속과 결합하는데, 금속에서 산소란 여간 골치아픈 원소가 아니다. 금속 산화라는 건 단적으로 말해 녹(rust)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접을 하고 났는데 용착부가 녹덩어리라면 어찌 되겠는가. 때문에 용접중에 산소를 차폐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무진장한 피땀을 흘렸다. 현재 나와있는 용접법의 분류는 곧 산소 차폐방법에 따른 분류다.
글이 길어져 두개(쓰다보면 3개가 될수도..)로 나눕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