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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 Sep 02.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鐵) 이야기_4

영화 <인생>을 보다가 든 생각

   3개 정도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철 이야기가 원래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기왕 시작했으니 간다.


전기로와 미니밀


   쇳물을 얻는 방법이 고로만 있는게 아니다. 녹여서 쇳물 만드는 원료가 철광석만인 것도 아니다. 푸구이의 마을에선 멀쩡히 타고 온 자전거를 토법고로에 던져넣는데, 과연 그러하다. 고철을 녹여 그 쇳물로 슬라브도 빌렛도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고철을 녹이는 방법은 소형 고로처럼 생긴 샤프트로(shaft furnace)도 있지만 현재는 거의 완전히 전기를 사용한다.

   순수한 철의 녹는점은 1538˚C다. 녹는점은 탄소 함량이 많을수록 떨어져 탄소 0.2%인 저탄소강은 1500도 언저리, 탄소 1.5% 고탄소강이 1400도 정도다. 탄소 4%인 주철은 1200도 내외에서 녹는다. 이 온도까지 가열하여 다량의 철과 강을 녹일 열량을 내려면 전기 저항열이나 유도가열 가지고는 턱도 없고 전기로 아크(arc)를 발생시켜 그 열로 철이나 강을 녹인다. 이제 바야흐로 전기로(電氣爐)가 등판할 때다.


   아크는 전자의 방전 현상이다. 서로 떨어진 두개의 전극에 전압을 가하면 한쪽 전극에서 상대 전극으로 전자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강한 빛과 열이 발생한다. 우리 주위의 아크 방전 현상은 무수히 많다.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접촉시키면 스파크가 튀는데, 확대해 볼 수 있다면 사실 스파크는 전선이 붙었을 때가 아니고 붙기 직전과 떨어진 직후, 즉 아주 가까이 근접했을 때 튄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형광등은 아크 방전을 이용한 조명 기구며 제우스의 무기, 즉 번개가 아크 방전이다. 건조한 겨울에 옷을 갈아입다 깜짝 놀라는 정전기 또한 아크 방전 맞다.

   정전기는 전압이 2천~5천 볼트(V)로 매우 높지만 전하량(전류)이 극히 적어 인체에 아무 해가 없다. 번개는 전압이 10억 볼트에 달하고 전류 또한 엄청나지만 워낙 순간에 그쳐(0.02초 이하) 위력에 비해 피해는 적다. 고전압에 충분히 많은 전류를 실어 아크를 발생시키면 어떻게 될까? 아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금속도 녹인다.

영화배우 강동원 씨의 불활성가스 텅스텐 아크용접(TIG). 상당한 숙련을 요하는 용접인데, 복장에 문제가 있다. 안전하다 해도 최소 토시 정도는 껴줘야 한다.


   용접에 대해서는 나중 기회 있을때 써봐야겠다. 전기 아크로(Electric Arc Furnace; EAF)는 이렇듯 아크 방전을 이용하여 쇳물을 얻는 방법이다. 철광석은 불가능하고 고철을 녹여 강을 만든다. 하부가 내화벽돌로 축로된 로에 고철을 넣고 전극봉을 재료 상부로 내린 후 고철(-) 전극봉(+)에 전압을 가하면 아크가 발생하고 이 아크열로 재료가 녹는다. 로 외벽과 지붕은 냉각수 배관으로 칠갑을 한 철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개폐할 수 있다. 아크를 발생시켜 고철을 용융시키는 작업은 지붕이 덮혀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전극봉은 주로 흑연으로 만드는데, 소모품이므로 정기적으로 교환해야 한다.

음성 철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전기로 실물. 3상 교류전원을 사용하므로 전극봉이 3개다. 로를 기울여 쇳물을 출탕할 수 있도록 하부에 치차식 경동장치가 있다.

   

   고철이 단일 강종도 아니고 제조자가 생산하고자 하는 강종과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므로 녹이면서 화학성분을 맞추어야 한다. 일단은 산소를 주입, 고철 내부 불순물을 산화시켜 제거하는 방법을 쓴다. 산소는 이 목적 외에도 연소에 의한 열에너지를 공급하고 분사 압력으로 용강을 '휘젓는' 효과도 있다. 산소 주입으로 발생하는 산화철은 위로 떠서 슬래그를 형성하므로 출강 후 걷어내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기로에는 고철과 함께 순수한 철에 가까운 철 원지금(pure iron ingot)과 합금강 원소 지금(地金)도 투입하여 화학 조성을 맞춘다. 고철에 존재하는 원소들 중에 구리(Cu), 니켈(Ni), 크롬(Cr), 몰리브덴(Mo) 같은 원소들은 철보다 산소 반응성이 떨어져 산소로써 제거할 수 없으며, 이는 전기로(爐) 탄소강의 원초적 품질 문제가 된다.

지붕이 덮힌 후, 아크 방전 찰나의 전기로

   전기로에서 녹은 강을 연주 공정으로 운반하기 위해 래들에 붓는 작업을 출강(tapping)이라 한다. 출강과 출강 사이 시간 간격을 Tap-to-Tap Time이라 하며 전기로 용량과 함께 전기로의 성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로, 대개 60분을 넘기지 않는다. 출강한 용강은 래들에 담겨 연주 공정으로 가는 길에 정련로(Ladle Furnace; LF)에 들르게 되는데, 래들 그대로 들어갔다 나오는 정련로에서 한번 더 불순물 제거와 합금원소 조정을 한다. 정련로의 가열 방법 역시 전기 아크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전기로는 일관제철소의 고로와 전로를 대신하는 설비임을 아셨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설비비가 소요되는 고로와 전로 대신 전기로 하나면 강을 끓여낼 수 있으니 생산 단가는 나중 일이고 일단 훨씬 저렴하게 생산 라인을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저개발국이 처음 제철사업을 시작할 때는 거의 전기로 제강법을 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기로 쇳물로 강제품을 제조하는 제철소를 미니밀(Mini Mill)이라 한다. 소형(mini) 제철소(steel mill)라는 뜻이다. 제철 사업을 일관제철소에 앞서 미니밀부터 시작하는 것은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포항에 일관제철소가 건설되기 훨씬 전에 인천과 포항, 창원, 부산 등지에 전기로를 사용해 철강 산업의 초석을 다져온 제철소들이 있었다.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인천공장), 강원산업(현 현대제철 포항공장), 동국제강, 한국철강, 동부제철, 부산파이프(현 세아제강) 같은 전기로 제철소들은 여전히 한국 철강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기 아크로를 현재와 가까운 형태로 발명 완성한 사람은 영국의 기술자 찰스 윌리엄 지멘스(Sir Charles William Siemens, 1823~1883)다. 독일(프로이센)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인물이며, 찰스 윌리엄은 독일 이름 카를 빌헬름의 영어 버전이다. 그의 큰형님 되시는 분이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Ernst Werner von Siemens, 1816~1892), 물리학자이자 전기 기술자고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그 지멘스사, Siemens AG의 설립자다.

카를 빌헬름 지멘스(左)와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右) 형제

   지멘스 그룹은 오늘날 식기 세척기 등 가전제품과 보청기, 각종 의료기 같은 대중적 제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기계의 두뇌와 심장을 이루는 제어 및 중전기(重電機) 메이커로 이름이 높다. 발전기, 대형 모터, 특히 산업용 컴퓨터 즉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만 한 세계 1위다. 원자력과 철도챠량 시장에서도 세계 3위권을 벗어나지 않는 등, 한마디로 전기에 관한 한 만들지 않는게 없고 만드는 모든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인 기업이다.

   베르너 지멘스는 전기전도도의 단위인 지멘스(S)가 말해주듯 전기를 연구한 물리학자였다. 동시에 피복 구리 전선을 개발했고 현대적 발전기의 원형에 가까운 제네레이터를 발명한 기술자였다. 또한 동시에 자신의 기술을 돈으로 바꿀 줄 알았던 사업가이기도 했다.


   기술을 돈으로 바꾸는 데 있어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만한 사람이 있을까? 유럽의 지멘스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종합 전기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설립자가 에디슨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업에 미친 사람이었다.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판매하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직접 음반 사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물론 콘텐츠 산업은 발명과는 별개여서 동요나 만담 같은 음반이나 내다가 말아먹었다. 그는 또 영사기를 만든 김에 영화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최초로 관람료를 받고 영화를 상영한 사람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니라 토머스 에디슨이었다(당연히 말아먹었다). 어찌보면 스타트업의 선구자다. 100년 후 까만 티셔츠를 입은 한 천재가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 후 음원 사업까지 치고 들어간 건 대선배의 자취를 따른 것 아니었을까?

   

   돈 될 수 있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게 자본주의 선진국이다. 고명한 학자인 베르너 지멘스도 과학자로만 안주하지 않았고 토머스 에디슨은 사업, 또 사업, 오로지 돈을 향해 질주했다. 에디슨은 부하 직원들 아이디어를 훔치고 특히 니콜라 테슬라의 뒤통수를 친 일로 두고두고 씹히는 사람이다. 도덕적 견지에서 비판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보자. 그의 돈벌이 본능은 혁신의 플랫폼을 낳았다. 전구를 발명한 뒤 전구 판매에만 만족한 게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여 전구에 불을 밝히는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 오늘날의 GE다.

   지멘스와 에디슨, 후대의 스티브 잡스 모두 과학자나 발명가로서가 아니라 기술 혁명의 플랫폼을 깐 인물들로 기억해야 한다. 지멘스 형제들이 물욕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발명에 몰두했다면 지멘스사가 100여년에 걸쳐 세상에 내놓은 눈부신 기술들이 가능했을까? 에디슨이 발명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정통 과학자였다면 GE가 이끈 현대 발전 기술은 몇십년 늦어졌을 것이다. 잡스의 애플까지 오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윌리엄 지멘스가 전기 아크로를 발명하고 특허를 낸 것이 1879년이다. 그로부터 120여년이 지난 2000년대 초에서야 지멘스 브랜드를 단 전기로가 세상에 나왔다.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 제철소의 철강 플랜트 엔지니어링 자회사인 VAI(VoestAlpine Industrieanlagenbau)를 지멘스가 인수하여 계열사 Siemens VAI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지멘스 가문은 여전히 지멘스 그룹의 대주주다.

(※Siemens VAI는 현재 일본 미쓰비시히타치 중공업과 합병되어 프라이메탈, Primetals Technologies로 재탄생했다.)


   정리하자. 일관제철소와 미니밀, 두 형태의 제철소를 요약 비교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일관제철소(上)와 미니밀(下)의 공정 비교


   그렇다면, 설비비 많이 드는 일관제철소를 뭐하러 지을까? 전기로로도 충분히 강재를 뽑아낼 수 있는데?

   분명히, 미니밀은 저렴한 초기투자 외에도 일관제철소는 갖지 못할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일단 생산 계획을 매우 유연하게 세울 수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 능력은 고로가 따라갈 수 없고, 일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고로에 비해 수틀리면 생산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은데, 첫째, 생산 비용 측면에서 불리하다. 고철 단가는 현재 kg당 500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강 완제품 단가의 절반에 달한다. 거기다 한국의 경우 고철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막대한 전기요금을 고려하면 생산 원가는 일관제철소보다 불리한 것이 당연하다.

   둘째, 강판, 그중에서도 후판(두께 6mm 이상의 평판. 통상 steel plate라 하면 후판을 말한다.) 생산에 부적합하다. 판재는 강도, 인성(忍性), 전연성과 용접성에서 품질 기준이 다른 강재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 발전 설비와 조선업 각기 자기들만의 엄격한 품질 요건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전기로에서 고철을 녹여 생산한 슬라브는 전술한대로 재질 순도에 한계가 있어 절대적으로 품질을 맞추지 못한다. 전기로 제철소는 상대적으로 품질 요건이 낮은 형강류 위주이며, 판재의 경우 냉연 박판의 중간재인 열연 코일(둘둘 말렸다 하여 코일이다.)을 제한적으로 생산할 뿐이다. 고로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후판을 생산하는 동국제강은 슬라브를 포스코 등 일관제철소에서 구입하여 압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관제철소와 미니밀 각자 경쟁력 있는 사업에 집중한다. 일관제철소는 고품질의 후판과 열연코일 대량생산 체제로, 미니밀은 재질과 규격이 다양한 봉강, 형강, 철근, 선재 위주로 운영한다. 특수강이라 하는 봉강 형태의 합금강(alloy steel)은 미니밀이어야만 가능한 분야로 인정된다.



토법고로, 대약진운동, 그리고 첸쉐썬(钱学森)


   토법고로는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철강 생산을 위해서는 양질의 철광석 또는 고철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걸 차치하더라도, 고로 1기로 하루 1만톤을 쏟아내는 현대식 제철소를 무슨 수로 당하겠으며 한나라 시대의 철가마로 현대 산업이 요구하는 품질의 강을 무슨 수로 만들어 내겠는가. 그조차도 숙련된 철강 인력이 아닌 농민들을 동원했으니 처음부터 말이 되는게 하나도 없었다.


   역사를 보거나 현재의 지구촌 이런저런 사건들을 보거나, 국가 단위에서 벌인 어떤 바보짓이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합리적인 이유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다. 합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그때 그 집단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할만한 요소가 하나쯤은 있다. 그러나 토법고로에 대해서는 실로 단 한가지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중국은 19세기에 근대식 제철소를 건설한 나라인데, 어떤 연유였을까? 토법고로로 대표되는 대약진운동을 밀어붙인 마오 쩌둥 주석만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오 쩌둥(毛澤東, 1893~1976)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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