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가공이란 무엇인지 전편에서 이야기했고 이번 편은 대표적인 소성 가공기, 프레스에 대해 늘어놓아 볼까 한다.
영단어 [press]는 본래 동사로 '누르다', 명사로는 압박, 압력이라는 뜻이다. '공부의 신' 강성태 씨에 따르면 press란 단어에서 compress(압축하다), depress(우울하게 하다), express(표현하다), impress(깊은 인상을 주다), oppress(억압하다), suppress(억누르다) 같은, 누른다는 의미의 단어들이 파생되었다고 한다. 아마 소수겠지만 press라는 글자를 보면 역기(barbell)가 떠오르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같은 사람들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플라이휠 방식의 펀칭 프레스(左)와 유압식 드로잉 프레스(右)
압축 또는 압착기, 즉 프레스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까지의 유물 중에도 올리브유 압착기나 포도 압착기가 있고 갖가지 곡식 빻는 기구가 있었다. 고문 기구가 있고 동전 찍는 기계까지 있었다. 바닥에 형틀이나 받침을 놓고 재료를 그 위에 올린 후 위에서 누르거나 치는 기계는 이름이 대부분 프레스다. 재료가 밀가루 반죽이면 waffle press고 원두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밀어 누르는 장치는 프랑스에서 발명되었다 해서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다.
이 프레스가 금속의 소성 가공에 사용되면 아주 열일을 한다. 프레스로 할 수 있는 금속 가공법은 수십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몇개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단조(forging) : 앞서 소개한 대장간 망치 작업을 이제는 프레스로 한다. 기계 단조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 절곡(bending) : 글자 그대로 얇은 판을 굽히는 작업
○ 전단(shearing) : 얇은 판을 가위로 자르듯 절단하는 작업. 이 역할 전용의 프레스를 전단기(shearing machine)라 한다.
○ 펀칭(punching)과 블랭킹(blanking) : 얇은 판에 구멍을 내는 작업. 구멍을 따내고 남은 판 외형을 쓰면 펀칭, 따낸 부분을 쓰면 블랭킹이다.
○ 엠보싱(embossing)과 디보싱(debossing) : 재료 표면에 문양을 각인하는 작업. 돋을새김(凸)이 엠보싱, 오목새김(凹)이 디보싱인데, 보통 엠보싱이라 통털어 말한다.
○ 드로잉(drawing) : 얇은 판을 깊숙히 눌러 오목한 형상을 만드는 작업. 스테인리스 식판을 연상하면 된다. 깊이 성형하는 드로잉(deep drawing) 방식으로 싱크대, 각종 식기류, 알루미늄 캔 같은 생활 밀착형 제품이 얻어진다.
Deep drawing 제품 예(例)
전단이나 펀칭, 블랭킹이 금속에 영구변형을 일으키는 소성가공의 정의에 맞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너무나 깔끔하게 커팅되지 않는가. 그러나 전단 거동을 확대해서 보면 위아래 공구가 재료에 전단 변형을 일으키고, 그 변형이 항복점을 지나 파단에 이르러 재료가 분리되는 원리이므로 소성가공이 분명하다.
전단 소성변형
우리 일상에서 보는 밥그릇, 숟가락, 문짝의 경첩, 벽에 박는 못이 모두 프레스에서 나온다. 건전지가 찍어져 나오고 반도체의 발 달린 리드프레임을 프레스로 찍어낸다. 자동차 부품의 절반은 프레스 소성가공으로 제작된다. 실로 기계산업의 중추라고 할만 하다.
이렇게 프레스를 이용한 금속 소성 가공에는 막대한 장점이 있다. 빠르게, 품질 편차 거의 없이 대량 생산을 하는데는 프레스를 능가할 가공법이 없다. 가공면도 미려하고 비교적 복잡한 형상도 쉽게 찍어내며 적당히 숙련된 작업자로도 충분하다. 소성이 아니라 금속의 조직을 제거하는 방식의 가공, 즉 절삭가공과 비교해 보면 이 점이 두드러지는데, 가령 판금 절단과 펀칭을 직소(jigsaw)와 커터드릴(cutter drill)을 써서 한다고 생각해 보라. 전기공사 할 때라면 모르되 일정한 제품을 다량 제작하는 일이라면 작업 효율과 품질, 모든 면에서 프레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프레스로 하는 소성가공의 단점이라면 기계 자체도 비싸고 금형, 즉 공구값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어떤 프레스든 금속을 성형하는 프레스의 상,하 형틀은 단단한 공구강(工具鋼)으로 만드는데 이것이 금형이다. 금형은 오직 그 용도로만, 특별한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한다. 그래서 절곡이나 절단 정도라면 모르되 그보다 복잡한 가공용 금형비는 무척 비싸다. 제품의 형상이나 두께만 조금 달라져도 금형을 바꾸어야 하고 마모 때문에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것도 아니어서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또 하나의 단점은 프레스는 기본적으로 전용기(全用機)라는 것이다. 제품과 가공법마다 프레싱 속도가 다르고 찍는 힘이 달라서 프레스 한대로 커버할 수 있는 공정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한 제품에 두가지 이상의 금형이 사용된다면 금형 바꿔 끼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찍어내도록 프레스를 한두대 더 설치하는게 차라리 경제적이기도 하다.
프레스 금형의 예(例). 뒤쪽에 있는게 상부, 앞쪽이 하부로 한 조(組)를 이룬다. 강판에 여러개의 구멍을 동시에 뚫고 외곽 트리밍까지 할 수 있는 금형이다.
그러므로 가공에 프레스를 도입할 것인지의 여부는 생산계획, 궁극적으로 제품의 판로에 달려 있다. 수천, 수만번의 반복작업이 필요한데 제품 단가는 낮다면 생산성을 위해 당연히 프레스를 써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멍 따내는 데 레이저 커팅을 쓸 수도 있고 엠보싱에 방전가공(放電加工)을 채택하는 등 다른 옵션도 있다. 생산성과 미래 영업, 대체기술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중소기업 사장이 프레스 한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 몇년씩 고민하는게 보통이다.
그렇다 보니, 자동차 메이커의 경우 대부분의 부품을 협력업체에서 조달받아 조립만 하지만 대형 프레스로 제작해야 하는 차체와 외장은 반드시 본사 공장에서 하고 있다. 원청사를 믿고 프레스와 금형에 수백억을 투자할 협력업체는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외판용 프레스. 3대가 연속되어 있다. 제품이 통과하며 3가지의 가공이 가해진다.
위와 같이 소재 공급이 자동으로 되는 라인이라면 별 문제 아니겠으나 단독으로 사용되는 프레스는 기계공장 최대의 위험요소다. 소재를 넣고 상부 슬라이더를 내려 가공을 하고 제품을 빼내는 게 손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으니 특히 여러 자잘한 부품을 취급하는 중소기업에서는 프레스가 안전사고의 화약고라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안전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기계 작동부와 작업자 사이에 포토 센서(photo sensor)를 설치하여 팔이 들어간 걸 감지하면 슬라이더가 내려오지 않도록 록(interlock)을 걸어놓기도 하고 스위치를 반드시 양손으로 눌러야 작동되도록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작업자 탓이 가장 크다. 생산량에 쫓긴다는 건 핑계고 사실 귀찮고 불편해서 록 해제하고 팔 집어넣거나 스위치 한쪽에 이물질 쑤셔넣어 다른 한쪽 스위치만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지금이야 세대 교체도 되고 인식도 변해서 그런 일이 드물지만 내가 기계공장 처음 드나들던 시절에는 작업자들 안전의식이 희박해서 손가락 잘린게 자격증이라 말하는 분도 있었다.
Press라는 단어의 또 하나 아주 중요한 뜻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네이버 영한사전에서 press의 뜻 첫번째와 두번째가 신문(언론), 그리고 언론인(기자)이다. 누른다는 원뜻의 press가 언론과 언론인을 말하게 된 이유는 아래 그림과 같은 초기의 인쇄기가 눌러서 찍는 기계, printing press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
Printing Press. 실제 당시의 사과 압착기를 응용한 기계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는 금속활자 뿐 아니라 위 그림과 같은 인쇄 프레스도 발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가지고 직접 인쇄업까지 벌였다. 최초의 'press'는 종이에 활자를 누른 건 아니고 반대로 활자를 아래에 깔고 틀에 끼운 종이를 눌러 글자를 찍는 방식이었는데 숙달된 인쇄공은 1분에 10장까지도 찍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건 42행 성서(한 페이지에 42행을 찍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성서같이 재미없는 책으로 영업이 될 리는 없다. 라틴어 문법책, 즉 학생용 교재를 찍어 팔고, 이단이었으나 민중에게는 대단한 인기였던 시빌라(Sibylla) 예언서도 인쇄 판매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 질 좋은 면죄부(免罪符)를 납품해 돈을 벌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후세에 근대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기 전, 당시에 이미 혁명이었던 이유는 책 한권에 연봉을 털어야 할 정도로 비쌌던 책값을 단박에 5분의 1 이하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비쌌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보듯 책 제작이 필경(筆耕) '노가다'에 의존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천지 개벽 수준이었다. 구텐베르크 시대에 유럽에 유통 또는 소장된 서적은 1000년 전 고문서 포함 10만권이 채 못되었는데 금속활자와 인쇄술의 발명 이후 50년간 2000만권이 발간되었다 하니, 그 폭발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
금속활자와 인쇄술의 발명이 근대의 첫걸음이자 지식 혁명, 과학 혁명 그리고 계몽시대의 신호탄이 된 것은 그의 사후 활자 제작기술과 인쇄술이 전 유럽에 퍼져나간 뒤의 일이었다. 구텐베르크를 얘기할 때 그가 인쇄한 성서가 반드시 거론되고 성직자가 독점한 성서를 민중이 읽게 됨으로써 중세의 우매함에서 벗어나 근대 정신이 촉발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신앙심 깊은 학자들의 사후 희망 충족적 분석이라 본다. 성서를 민중이 직접 읽게 된 것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의 공이었고, 성서 자체의 성격상 거기서 비판적 근대 정신이 나오기는 사서삼경 한글판을 읽고 조선민중이 지배층을 때려엎는 것만큼 가능성 희박한 가설이다. 성서 인쇄는 사업 잘 되도록 교회의 축복을 받을 용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대중은 활자로 된 오락거리를, 지식인은 활자로 된 철학과 자연과학 책을 찾았고 그 수요에 출판업이 급성장, 연쇄작용으로 지식문화가 발화했다는 게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근대화 요인은 언론이었다. 뉴스는 찍기도 쉽고 찍으면 돈이 되어 언론업이 꽃피기 시작했던 것이다. Press가 정확히 언론을 뜻하는 단어가 된 이유다.
고려 말에 이미 금속활자로 불경을 인쇄했던 우리나라는 조선조에도 활발하게 서적을 간행했는데 프레스까지 개발하지는 못했다. 활자에 먹물을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펴 톡톡 치는 방법을 끝까지 고수했다. 매우 낮은 생산성이었으나 구태여 개선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수요가 원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는 주조 비용이 많이 들어 중앙 조정 말고는 엄두도 못냈는데, 조정에서 발행한 도서라야 영리 목적은 전혀 없는 성현의 말씀, 농업서적, 조보(朝報)라는 일종의 관보, 이런저런 의궤(儀軌) 정도였다. 민간에서는 서원을 중심으로 목판인쇄로 역시 유교 서적이나 학생들 교과서를 소규모 출판했고 그 외 민간 인쇄물은 유학자의 저서나 기술서적, 한글 소설등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역시 출판 규모는 극히 작았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사용한 찬란했던 문화는 세계사는 물론 한국사에도 흔적 하나 남긴 것이 없다.
혁명의 최초 폭발은 작으나 인화물질로 가득 찬 창고라면 작은 불꽃으로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면 블록버스터가 터진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유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라는 폭탄을 터뜨릴 때의 유럽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즈음,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역로를 경쟁적으로 개척해야 할만큼 부(富)의 정점에 있었고 부르주아지 중산층이 한껏 성장할 때였다. 책을 사 볼 의지도, 책 살 돈도 충분할 시기였으니 시대의 수요를 볼 줄 아는 자라면 구텐베르크의 발명에 전재산을 걸었을 것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고려와 조선은 시쳇말로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책 사볼 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소성가공, 그리고 프레스 이야기 계속하자. 소성가공의 진수를 모아놓은 동전(coin)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동전은 주화(鑄貨)라는 표현처럼 옛날에는 금, 은, 동 등의 금속을 주조(casting)하여 만들기도 했다. 조선의 상평통보, 로마의 데나리온이 녹여 부은 주화다. 그렇지 않고 금속을 찍어(엠보싱) 만든 화폐도 많이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렇게 소성가공으로 생산된 돈도 주화라고 부르겠다. 오늘날에는 주조하여 제작하는 주화는 전세계에 한개도 없고 모두 프레스로 찍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