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현 Oct 03. 2022

대장간에서 압연기까지_4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성가공 이야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노트에는 미술작품 초안과 인체 해부도 외에도 시대를 앞서 간 수십가지 기계 스케치가 있다. 낙하산도 있고 헬리콥터식 비행체와 장갑차까지, 단순한 개념도를 넘어서 거의 도면에 가까운 그림도 여러장이다. 당시에 그 도면들로 실물 제작을 시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스케치들이 모두 다 빈치의 머리에서 나온 게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여러 도시에 써보낸 이력서에 자신을 공성병기 기술자라 소개하고  있고, 이탈리아 전쟁으로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도망칠 때도 무기 기술자로 스카웃 되었던 걸 보면 엔지니어가 본업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의 스케치 중에 공성무기인 발리스타(ballista)를 개량한 듯한 대형 쇠뇌가 있는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그 스케치를 본 것이 분명하다. 시즌 8에서 유론 그레이조이 함대에 탑재되어 대너리스의 드래곤 한마리를 쏘아 떨어뜨리고 그녀의 함대를 몰살시킨 전갈석궁이 다 빈치의 구상과 유사하다. 만일 그정도 위력이 사실이라면 베네치아는 상업 뿐 아니라 군사력으로도 이탈리아를 제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 빈치가 설계한 단조 기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박물관에 그의 스케치 중 하나인 캠식 단조 해머가 실물 재현되어 있는데, 당시에 제작 보급되었을 것 같지는 않고 이 구조로는 타격력이 너무 약해 나무에 못 하나도 제대로 박을 수 없을 것 같다. 기계가 아니라 손자 장난감을 설계한 것을 후대인들이 오해한 것 아닐까?

다 빈치 단조 해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고안과 같이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데 망치 대신 쓴 기계를 트립 해머(trip hammer)라 한다. 인력이나 수력으로 망치를 들어올려 떨어뜨리는 장치다. (물론 원래부터 쇠를 다루는 일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은 아니다.) 절구공이를 바퀴의 마찰력을 이용해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낙하시키는 장치도 있고 지렛대를 응용하여 보다 작은 힘으로 큰 낙차를 얻는 방법도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디딜방아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물레방아는 그 지렛대를 수차의 회전력으로 들어올리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BCE 300년경에 물레방아로 곡식을 찧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에서는 BCE 10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엄밀성이 요구되는 학술 분야까지 중국식 뻥이 작용하니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트립 해머가 대장간 작업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 이 장치가 등장한지 1500년이나 지난 CE1200년 전후다. 그러니까 다 빈치의 우스운 기계도 당시로서는 신기술 대접을 받을만 했다.

스웨덴 엥겔스베리(Engelsberg) 제철소의 수력 단야(鍛冶) 해머. 왼쪽 수차 축에 4개의 캠 돌기가 있고 그 돌기들이 오른쪽 해머를 들어올린다.

   트립 해머는 기본적으로 중량을 들어올리는 것만 기계로 하고 타격력은 오직 중량의 자유낙하에 의한다. 중량의 낙하에 강제력을 더해 타격력을 올리는 발상은 산업혁명 이후에나 등장한다. 적어도 BCE 3000년 부터 시작된 철 가공법 중에 가장 먼저 쓰인 기술이 단조법인데, 그러니까 인류가 단조를 발명한지 4200년만에 사람의 팔뚝을 보조하는 장치로 철을 두들기게 되었고 그 원시적인 장치조차 개발된지 1500년만에 단조에 응용한 것이며, 그로부터 500년도 더 지나서야 본격 기계화가 된 것이다. 옛 사람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기계를 머리로 그려낼 수 있었지만 손으로 두드리는 편이 더 경쟁력이 높았을까?


   말(馬)이 인류의 가축이 된 시기는 대략 BCE 4000년경, 말을 운송이나 전투 같은 승용(乘用)으로 부리기 시작한 때는 늦게 잡아도 BCE 13세기다. 말의 가축화와 함께 마구도 일찌기 발달하여 입에 채우는 재갈, 농기구나 마차를 끌기 위한 멍에와 길마, 말발굽의 편자, 승용마의 안장이 말과 역사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말안장에 매달아 기수의 두 발을 받치는 등자(stirrup)만은 충격적일 정도로 늦게 개발되었다. 인간이 말 등에 올라탄지 최소 1500년만인 기원후 2~3세기에서야 처음으로 등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중국의 초원지대에 처음 등장한 시기이며 유럽의 기병들이 등자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것은 9세기 정도였다. 이것이 충격적이라 하는 이유는 등자가 지극히 단순한 도구인데다 너무나 쉽게 떠올릴 수 있고 필요성 또한 승마자가 절감할만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등자가 없던 시절의 기병은 마상전투라도 벌어지면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말 옆구리를 꼭 붙잡아야 했다. 병기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고 낙마해서 적의 칼에 도륙되는 일도 많았다. 오랜 세월동안 그 많은 승마인구 중에 누구라도 어딘가 걸터앉아서 발을 대롱대롱 땅에서 띄웠다가 땅에 대봤다가, 그러다 불현듯 전류를 맞는 자가 한명도 없었을까?

등자 없이 말에 올라탄 페르시아 중기병

   등자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기병의 전투력이 급상승했고 말을 탄 기사 계급이 중세의 주역으로 부상했다고 하는데, 그런 결과적 해석보다 왜 등자처럼 뻔한 물건이 그렇게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을까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무엇이 만들어진 이유는 찾기 쉬운데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말이라는게 매우 비싼 짐승이라 말타기가 흔하지 않았다는게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스펙이 낮아 수레나 농기구를 끈 말은 그나마 저렴했지만 타는 말, 특히 군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몹시 비쌌다. 지금도 경마용 좋은 말은 수천만원에서 억단위가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로마 평민 계급 중에서 말을 구입할 정도의 재산을 가진 1급 시민이 바로 '기사'로 번역되는 에퀴테스였는데, 군마는 그 기사 계급조차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로 비싸서 국고로 공마(公馬)를 구입하여 원정 나가는 기사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값만 비싼게 아니라 말은 귀한 곡물도 마구 먹어치웠고 유지관리 전담 인력 인건비까지 말 밑으로 들어가야 했다. 때문에 고대 전투를 그린 영화 장면들 탓에 생긴 기병에 대한 착시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기병이 주력이었던 군대는 존재한 적 없다.

   이렇듯 소수의 승마 인구만이 특수 교육을 받고 말을 탈 수 있었고, 인식의 벽은 그 폐쇄성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필요한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도 소통, 즉 필요가 유통되고 증폭되고 이윤 유인이 되지 않으면 기술 개선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수천년동안 대안 없이 대장장이의 손으로 망치를 휘두른 이유도 그들끼리 불편을 당연시하고 인식의 벽을 둘러친 때문이 아니었을까?


   트립 해머를 넘어선 최초의 동력식 단조 해머는 증기를 사용한 프레스였다. 발명자는 프랑수아 부르동(François Prudent Bourdon, 1979~1865)이라는 프랑스 엔지니어였는데 이 발명을 두고 영국의 제임스 나스미스(James Nasmyth)와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 분쟁을 벌였다. 제임스 나스미스는 헨리 베서머가 전로 제강법을 개발하는데 영향을 주기도 한 철강 엔지니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 이야기_3 참조)

최초의 단조 프레스 증기 해머(steam hammer

   이 발명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실용화한 증기 기관을 응용한 방식이다. 그림 오른쪽에 도시한 바와 같이 증기를 이용해 상부 램(ram)을 들어올리고 내려치며 가압을 하는 구조로, 이 기계를 당시에는 증기 해머(steam hammer)라고 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유압, 드물게 수압 프레스와 사실상 같은 원리다.


   현대의 단조 프레스는 거의가 다 유압을 사용한다. 공작물을 사람이 집게로 잡고 두들기는 소형 프레스는 모터로 기계적 힘을 얻는 기계식 프레스를 쓰기도 하지만 조금만 용량이 커져도 기본적으로 다 유압식을 채택한다. 기계식은 속도도 빠르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유지 보수도 쉬우나 제어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무엇보다도 용량이 증가하면 기계 크기가 턱없이 커진다. 때문에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계식은 이론상 가압력이 1만 톤도 가능하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1천톤 정도가 한계다.

기계식 단조 프레스의 원리. 여러 방식이 있으나 크랭크식과 너클식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단조 프레스는 창원 두산중공업의 1만 7천톤 프레스, 그 다음으로는 부산 강서구에 있는 (주)태웅의 1만 5천톤급으로 모두 유압 프레스다. 이 정도면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프레스군에 속한다.


   단조공장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대형 단조 프레스의 작업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벌겋게 달궈진 거대한 쇳덩어리는 방열복 없이는 10미터도 접근하기 어려울만큼 열기를 뿜는데 그 재료를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바닥이 울릴 정도의 타력으로 쿵쿵 때리고 그러다 보면 쇳덩어리에 불과하던게 어느덧 모양이 잡혀간다. 때리는 프레스 자체보다 눈길을 붙잡는 건 단조 재료를 핸들링하는 매니퓰레이터(manipulator)다. 프레스는 무심하게 내려치기만 할 뿐 소재를 움직여 모양을 잡는 건 매니퓰레이터인데 그 소재 핸들링 동작을 넋을 잃고 보게 된다.

단조 프레스 작업 광경(左), 매니퓰레이터(右上), 가열로(右下)

   

   그렇다면 단조를 왜 하는 것일까? 기계 설계자에 따라서는 부품의 제작 공정에 단조를 굳이 명시할 뿐 아니라 단조비(鍛造比)까지 규정하기도 한다. 단조비는 단조 前 형상(길이와 단면적)과 단조 후 형상의 비를 말한다. 지름 500mm에 길이 2000mm의 제품을 만드는 데 [단조비를 3 이상으로 할것]이라는 제작 시방이 있다면 단조 전 원소재(ingot)는 지름 866mm 이상, 길이 667 정도여야 한다(단면적 비율이므로 지름의 제곱이 1/3이 되어야 한다). 단조비를 규정하지 않으면 대충 비슷한 사이즈의 소재를 표면만 두들겨서 형상을 만들어도 할 말이 없는데 이는 설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단조비를 지시하면서까지 단조를 하면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일까?


   좋은 일이 있다. 금속재료 조직이 치밀해진다. 재료 내부의 기포(blow hole)와 공극(porosity), 편석(segregation)이 압착되고 분산되어 단조 전보다 훨씬 건전한 소재가 된다. 단조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주조로 만든 동일한 형상보다 인장강도와 인성(toughness)이 30% 이상 증가하고 피로 수명은 6배까지 올라간다. 금속의 피로(疲勞; fatigue)라는 건 인장강도보다 한참 작은 힘이라도 장기간 반복적으로 작용하면 금속이 강도를 잃고 파단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인체의 피로와 같다.

   금속 가공법 중에 절삭가공과 비교해도 단조는 강도면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 한번 소성가공을 거친 금속은 결정입자(grain)가 섬유조직처럼 단류선(metal flow)를 형성하는데, 단조는 단류선을 끊기지 않게 유지한다.

   위 그림으로 직관 가능한대로 단류선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주조법, 단류선이 끊긴 절삭가공에 비해 단조는 재료의 강도와 인성을 최대화하는 가공법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이해할 수 있다.

단조 골프채

   골프채 헤드처럼 3차원 모델링 된 형상은 절삭으로는 만들기 어렵고(머시닝 센터라는 기계를 쓰면 못만들 것은 아니다만) 주조 아니면 단조로 제작해야 한다. 당연한 우리는 단조 제품의 재질이 더 우수할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소재의 우수성보다, 골프 폐인들에 의하면 단조 클럽의 타구감이 더 좋다고들 한다. 임팩트 순간에 단조 소재 쪽이 주조품보다 휨(bending)을 더 많이 허용하므로 그게 타구감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래서 경력 있는 골퍼들은 비싼 단조 클럽을 쓰고 주조 클럽은 중급 이하에게 권장한다는데, 글쎄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비싼 골프채가 타구감도 좋을 것이다. 비거리는 별개의 문제다.


   집게(tong)나 매니퓰레이터로 소재를 잡고 두들기는 단조를 자유단조(free forging 또는 open die forging)라 한다. 자유단조는 아무래도 작은 제품에 부적합하고 복잡한 형상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에 반해 달구어진 소재를 금형 사이에 넣고 찍어내는 단조법도 있는데 이것이 형단조(closed die forging)다. 골프채 헤드 같은 제품을 형단조로 제작다. 자유단조는 최종 치수를 절삭으로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데 비해 형단조는 기술의 발달로 광택연마 정도만 해도 될 정도로 정밀한 단조가 가능하다. 단조와 함께 작은 글자까지 각인할 수 있을 정도다. 아주 다양한 기계와 자동차 부품이 형단조로 생산되며 많은 부분에서 주조나 절삭가공품이던 것을 날이 갈수록 형단조로 대체해 가는 추세다.


   이제 소성가공 마지막으로 압연(rolling) 이야기를 해야겠다. 압연은 앞서의 이야기에서도 간간히 언급되었듯 上,下 롤 사이에 금속 소재를 통과시켜 주로 판재를 생산하는 공정이다. 강판 뿐 아니라 L, H, I 등의 단면 형상을 갖는 형강도 압연으로 생산하고 봉강과 선재, 철근도 압연으로 만든다. 압연을 하는 기계가 압연기인데 영어는 rolling machine이 아니라 mill이라고 부른다. Mill은 본래 제분기(방아)란 뜻의 흔한 영단어지만 이 단어가 철강에 쓰이면 넓게는 제철소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steel mill) 좁게는 압연기만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압연기는 제철소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후판 압연기(plate mill)

    철강 기술의 꽃인 이 압연은 생산하는 제품도 다양하고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정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방대한 분야다. 제품과 공정에 따라 압연기의 종류도 많고 저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 판재 압연과 봉강 압연은 판재 압연과 자동차만큼이나 차이가 크며 같은 판재 압연이라 해도 열간압연과 냉간압연은 각각의 전문가들끼리 대화가 되지 않는다. 방대한 분야를 방대하게 쓰면 안되겠고, 심플하게 우리 일상에서 보는 자동차 외장 강판의 탄생 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하겠다.


- To be continued -

                    

매거진의 이전글 대장간에서 압연기까지_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