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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이탈리아 밀라노

바베노 - 밀라노 - 베니치아 - 밀라노



파리에 살며 여러 주재원 가족을 만났다. 

대부분 남편은 일하고, 아내는 아이들을 키운다. 파리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일의 강도가 한국에서보다 단연코 뒤지는 것은 아니다. 주말에도 불려 나가 일하기 일쑤고 야근은 기본에 자정이 돼서야 집에 오는 날도 비일비재하다. 감사 기간이라도 걸리면 일주일 내내 새벽 퇴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엄마 혼자 독박 육아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면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제적 지원은 매우 크다. 아이들을 비싼 사립 국제 학교에 척척 보내고, 파리 중심에 에펠탑이 보이는 월세 500만 원이 훌쩍 넘는 집에 살며 관리비 걱정마저 없다. 

월급도 두둑이 주니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하여 잃어버린 시간의 보상을 찾아 헤매듯 가족여행 또한 자주 다닌다. 평소에 아빠 얼굴을 구경조차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라고도 한다.

파리 현지에서 직접 채용한 한국인 직원에게는 프랑스 노동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한다고 한다. 프랑스 회사는 5주의 유급휴가가 있고 눈치 안 보고 칼퇴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갖추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프랑스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래서 한국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권위에 절대복종하고 개인의 권리보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현지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워 몇 달째 직원을 못 뽑고 있다며 한 주재원 법인장으로부터 지나치게 예의 바른 짝지는 채용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재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파리로 공간만 옮겨왔을 뿐 한국의 삶과 똑같이 힘겹게 사는 주재원 가족들을 지켜보며 세상엔 역시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느꼈더랬다. 그럼에도 넉넉한 재정으로 유럽 다른 나라들을 수시로 여행 다닌다는 점 하나는 무진장 부러웠다.

주재원 가족들에게 밀라노에 간다 하니 유럽의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밀라노는 진짜 볼 게 없다며 로마나 피렌체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행히 밀라노 자체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성당이 밀라노에 있긴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예약했어야 해서 패스하고, 시간도 짧고 아이들과 함께라 미술관마저 패스하니 진짜 가볼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숙소도 밀라노 시내에 있는 호텔은 너무 비싸 한국 민박집으로 예약했다. 그래도 밀라노에 왔으니 밀라노 대성당(두오모)도 보고 명품 거리로 유명하다는 근처 쇼핑가의 분위기도 한번 둘러보자며 부지런히 관광을 시도했다. 지하철 종일권을 끊고 두오모 광장으로 향했다. 관광지답게 그곳은 상당한 인파로 붐볐고 팔찌를 채워주겠다거나 셀카봉이나 장난감을 사겠냐며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다가왔다. 이날이 노동절 공휴일이기도 해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부터 워낙 많은 사람에게 치이다 보니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성당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이 눈에 잘 담기지 않았다. 밀라노에 가면 옷 잘 입는 멋지고 세련된 현지인들이 많다던데 내 눈엔 그저 과히 치장한 관광객들밖에 안 보였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에서 젤라또를 사 먹고 두오모의 조각상과 첨탑을 보기 위해 건너편 백화점 꼭대기 층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다시 내려와 잠시 두오모 앞에 앉아 휴식 시간을 가졌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라 하지만 더 고풍스럽고 세련된 파리에 익숙해서인지 그다지 예쁜 것도 모르겠고, 이런 관광객 천지인 장소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파리에서는 관광지에 갈 때면 신이 나곤 했는데, 막상 밀라노 시내 중심가에서 진짜 관광객이 돼 보니 모든 관광객이 일제히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을 나도 바라보며 같은 걸 느껴야 할 거 같은 기분에 갑갑증을 느꼈다. 

파리에는 보통 성당 주변에 작은 공원이라도 붙어 있기에 눈의 피로감이 덜 하다. 반면에 밀라노 대성당은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주변의 건물에 둘러싸여 고딕 양식의 장엄하고 웅장한 외관을 중앙에서 떡하니 뽐내고 있어 온통 회색밖에 안 보였다. 거기에 수많은 인파가 더해지니 눈의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두오모를 바라보니 훨씬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림이든, 건물이든, 사람이든, 인생의 문제든 역시나 어디에서 보는지가 참 중요하다. 두오모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찍어준 커플 사진을 건지고 미련 없이 두오모 광장을 벗어났다. 


작년에 오픈한 이탈리아의 첫 번째 스타벅스가 밀라노에 있는데 굉장히 독특하고 유명하다고 하여 찾아갔다. 새로운 콘셉트의 리저브 로스터리 프리미엄 매장이라는 스타벅스 밀라노점 내부는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카페 정중앙에 위치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로스팅 기계를 통해 커피 로스팅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고, 다양한 굿즈가 초입에 진열돼 있었다. 여러 종류의 화덕 피자와 빵 또한 볼거리였다. 진동하는 커피 향과 갓 구운 빵과 피자 냄새 그리고 칵테일을 즐기는 캐주얼한 분위기가 역시나 이탈리아 스타벅스다웠다. 


여러 블로그를 검색한 후 기대하며 찾아간 레스토랑이 하필 문을 닫았다. 배고픔과 오랜 시간 걸어 무거워진 다리로 지쳐있던 터라 실망도 컸다. 다른 레스토랑을 검색할 에너지도 이미 바닥이라 그 근처 젊은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캐주얼한 피자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라자냐, 피자, 음료, 디저트 케이크를 주문하고 기다리니 곧 거대하고 두툼한 피자가 나왔다. 사진으로 남길 새도 없어 정말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댔다. 식사를 마치고 운하를 따라 다시 걸으니 산책하는 다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기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의 베네치아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정이 있어 아름다운 운하의 야경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고 숙소로 향했다.노동절이라 대중교통이 모두 끊긴 바람에 긴 줄을 서서 겨우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아이들만 없었다면 밀라노의 로맨틱한 밤 분위기를 만끽하며 멜로뽕짝 한잔하고 오붓하게 걸어갔을 텐데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다가 이내 따뜻한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밀라노의 밤 풍경도 나름 멋지다는 생각에 괜스레 아이들에게 미안해져 품 안에 있는 아이들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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