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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이탈리아 밀라노 2

바베노 - 밀라노- 베네치아 - 밀라노



파리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오후에 있어 마지막으로 오전을 이용하여 숙소 근처 밀라노를 걸어서 탐방했다. 걷다 보니 푸른 잔디와 공원이 나왔고 시야를 가리지 않는 뻥 뚫린 공간에 머무니 투어로 지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역시 우리 가족은 이게 잘 맞는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남들 다 가는 곳을 작위적으로 찍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현지인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공간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여행 말이다. 이탈리아 여행지로 유명하여 남들 다 가는 관광지의 총체인 듯한 베네치아 여행 다음 날이라 더 좋았던 거 같다. 짝지와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행복하게 노는 걸 지켜보며 밀라노란 도시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한참 기다려 준 후 이번에는 나를 위해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커피가 진짜 맛있다고 추천해 준 일리 카페로 갔다. 

일리라고 다 같은 일리가 아니다. 일리는 파리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지만, 밀라노 일리에서 경험한 라떼는 정말이지 인생 라떼였다. 체인 커피점이라지만 레스토랑처럼 앉아있는 상태에서 주문도 하고 음료도 가져다주었다. 많은 사람이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고, 커피만 테이크아웃 하는 이들도 많았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오래 머물고 싶은 카페였는데 셔틀을 타고 공항에 가야 하기에 서둘러야 했다. 그래도 아쉬워 숙소 가기 전에 하나만 더 들렀다 가자며 근처에 있는 멀티 브랜드 편집숍 <10 꼬르소 꼬모>를 방문했다. 명품 패션 아이템으로 가득했던 1층의 공간과 카페는 패스하고 2층 서점과 갤러리 그리고 옥상 정원을 둘러보았다. 책 하나와 상품 하나의 진열도 대충 막 놓은 게 아니라 주변 사물과의 조화와 디자인을 염두에 둔 거 같았다. 진열대와 의자, 조명 하나까지 허투루 갖다 놓은 게 없었다. 


둘째 아이가 갖가지 꽃과 식물로 가득한 옥상 정원을 아빠와 함께 먼저 발견하고는 너무 좋다며 책을 보고 있던 첫째 아이와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안내했다. 밀라노에 산다면 이곳을 자주 오겠거니 생각했다. 소나기가 들이닥칠 거 같은 하늘을 주시하며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매섭게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을 결국 만나고야 말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리치며 뛰다가 하늘이 구멍 난 듯 내리치는 빗줄기를 피해 큰 나무 아래로 일단 후퇴하다시피 들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홀딱 젖었다. 10분가량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만, 비는 잦아들 조짐이 안 보이고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왕 젖은 거 그냥 가자며 우리는 또 미친 듯이 숙소를 향해 내달렸다.


돌아보면 그런 기억이, 그때 힘차게 내려 피부에 꽂혔던 빗방울의 차갑고 으슬으슬한 느낌이, 좀 더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뛰어갈까를 두고 고뇌하는 우리와 다르게 이 모든 상황을, 변수를 즐기며 신나 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맞잡은 손의 온기가 여행의 묘미와 깊이를 더해주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이제 어디에서든 소나기를 만나면 밀라노에서의 이날을 기억하며 그때 우리 정말 재밌었다고 웃음 짓는다. 

그렇게 밀라노는 힘들고, 신나고, 지치고, 즐거웠던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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