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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스땅스 Jan 07. 2021

와이셔츠는 몰아서 다리는 게 맛이야!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우리의 보금자리로 들어섰을 때의 적막함이란. 사방이 고요해서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긴장과 설렘으로 가슴이 쿵쿵거리는 것 같았다. 큰일을 치른 뒤의 안도감과 이제야말로 둘이 의지하며 헤쳐나가는 현실을 마주한 그런 느낌! 10개월 만에 결혼으로 골인했으니 서로를 알기에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부모님들끼리 알고 지내던 사이라 나의 의지와 달리 빠르게 진행되었다. 종교 문제로 삐거덕 거렸지만 남편의 예상치 못한 '와우' 순간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먼 미래의 상황까지 브레인스토밍으로 밤잠을 설치던 나에게 일필휘지로 죽 긋듯 나의 직감이 평생의 친구로 이어졌다. 암튼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그때부터 서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모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나보다 출근 시간이 빨랐다. 결혼 전부터 새벽 수영을 하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거리를 챙겨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은 나와 같이 일어나 수영장까지 데려다주었고 돌아오는 길에 가볍게 운동 후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결혼식부터 신혼여행까지 일주일 넘게 자리를 비우니 그간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우리 두 사람은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퇴근 후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욕실로 들어갔다. 씻으러 들어간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뒤 고무장갑을 낀 채 바가지에 탈수한 와이셔츠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닌가?

" 뭐야? 와이셔츠 빨았어요?"

" 어, 입사하고 몰아서 하려니까 그게 일이더라고. 퇴근 후 저녁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매일 손빨래해봤는데 주말이 여유롭더라고"

"오호  아주  좋은 습관이네"

" 내가 손빨래할 거니까 와이셔츠는 세탁기에 넣지 말아요" 

"오케이! 알았어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런 바른생활 남편 같으니라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데 좋은 출발이네, 후후'  와이셔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집안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출중해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꿀맛 같은 첫 주말을 맞았다. 일주일간에 미처 챙기지 못한 청소, 빨래, 장보기 등등. 다시 시작되는 한주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늦은 아침으로 간단 식사를 하고 혼자가 아닌 우리 생활을 위한 일상을 하나씩 해치워야 했다. 나는 세탁 버튼을 누른 후 설거지를 했고 남편은 청소기를 돌렸다. 아직까지 우리 두 사람은 가사에 있어 적절한 배분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엉덩이가 무거워 식사 후 TV 앞에 앉아 있을 줄 알았지만 (아마 그랬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만) 함께 움직이는 남편을 보니 신선했다. 어릴 적부터 친정 아빠가 부엌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친정엄마를 도와주는 게 익숙하지만 남편은 훨씬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나 할까. 친정 아빠는 일의 완성도보다 마음이 더 느껴졌다면 남편은 그 두 가지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결혼 후 남편에 대한 탐구는 계속 진행되었고 그날부터 긍정의 점수가 조금씩 쌓여갔다. 

세탁완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띵동 띵동'. 베란다에 탈수된 세탁물을 널려고 보니 일주일간 남편이 손빨래한 와이셔츠가 뽀송뽀송해졌다. 거실 한쪽에 건조된 와이셔츠를 두었다. 빨래를 널면서 와이셔츠 다림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오잉! 청소를 마친 남편이 다리미를 준비한다. 두둥! 와이셔츠 하나씩 각을 잡으며 다리기 시작했다. 

" 자기 다림질 좀 하네. 자세도 좋고"

"어, 내가 이래 봬도 군대에서 한 다림질했거든.  다림질이란 게 힘이 좀 들어가는 거라. 다리미에서 물리 뿜어져 나오고 형태를 바로 잡아가는 재미가 있어"  

"난 귀찮아서 쇼핑할 때 다림질 필요 없는 걸로 고르는데, 솔직히 난 자기 와이셔츠 다림질은 생각도 못 했네" 

" 내가 가능하면 손빨래하고 바쁠 땐 세탁기 도움을 받지 뭐. 그리고 와이셔츠는 몰아서 다리는 게 맛이야!"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결혼 후  한 사람을 더 챙겨야 하는 작은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일주일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해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의 결혼 탐구생활이 돛을 내리고 쭉 순항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림질이 끝난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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