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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스땅스 Jan 08. 2021

친할머니가 아니라 "호"할머니

매운 할머니라고?

결혼하고 첫출산 후 아이가 말을 배울 무렵.  설 명절 전 휴가를 내고 일찍 남편과 시댁으로 갔다. 기저귀랑 분유 짐이 줄어드니 겨울철 여행 짐이 가벼워졌다. 기저귀를 졸업하고 더 이상 분유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는 '와우'의 순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늘어나지만 말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가는 길에 옛날 생각에 잠겼다. 

남편과 나는 고향이 같다. 어렸을 적에 제주도에서도 제주시가 아닌 조천이라는 곳에서 자랐고 6학년이 되어서야 제주시로 이사를 왔다. 반면 남편은 제주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위 나는 촌사람, 남편은 도시 사람이었다. 처음 시부모님을 뵌 건 남편이 동생들과 자취하는 잠실에 있는 아파트였다. 시부모님은 학교나 직장 생활로 서울에 있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제주에서 서울로 오셨다. 그 아파트에 나를 초대하셔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가까이에서 처음 뵌 두 분은 친정 아빠, 엄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식사중에 두 분이 자식들과 대화 나누는 분위기가 자유롭고 편안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가풍을 본다고 하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격의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오가는 이야기가 좋은 인상을 남겼다.  

제주도가 워낙 좁기도 하고 부모님들끼리 아는 사이이기도 했지만 결혼 얘기가 오갈 때 시댁과 친정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된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시댁과 친정은 멀수록 좋다고 하는데 말이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시아버님은 공항에 나오시고 우리는 편하게 시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정엄마를 만나러 갈 수 있다. 지척에 집을 두고 시댁을 가는 것에 대해 신혼 초에 엄청 남편한테 남녀 불평등이라며 혼자 열을 낸 적이 있다. 결혼이라는 관습, 제도라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시댁이 아니라 결혼을 해도 친정집, 저기가 내 집인데 말이다. 친정에 온 딸이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고 친정엄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엄마라고 답을 주실 수 있었을까? 철부지같은 내 모습에 고개가 절레절레. 



공항가는 길에 차에 기름을 채우려고 주유소에 들렀다. 

" 응? 마? 붕 안가?" (어, 엄마 자동차 왜 안 가요?)

"어 자동차가 배가 고파서 밥 먹고 싶대요"

" 붕, 맘마?" (자동차 밥?)

" 맞아. 자동차 많이 먹어라 하고 비행기 타러 가자"

한 단어만 들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세상 엄마라는데 나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 후 탑승수속을 밟고 다행히 기내에서 아이가 잠들어 나 역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도착 게이트 쪽에 시아버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 손을 잡고 남편은 짐을 찾고 나오라고 하고는 손녀딸을 기다리는 아버님을 뵈었다.  

" 아이고 고생했다. 우와 많이 컸네 우리 수빈이!"

"수빈아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려야지. 배꼽손 하고 안녕하세요 하자"

말을 배우고 알아듣기 시작한 첫째는 내가 시키는 대로 배꼽에 손을 얹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아유 인사도 잘하네. 할머니는  엄마 오면 김장한다고 어제오늘 재료 준비로 바쁘단다. 내일은 온 가족 김장 만들어 보자" 

"수빈아 할머니랑 내일 김치 만들자. 우리 수빈이 내일 좋은 경험하겠다" 

남편이 나왔고 시댁으로 행했다. 어머님은 언제나 그렇듯 문 앞에 나와계셨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손녀랑 자식들 생각에 추위가 느껴지지 않으시나 보다. 차에서 내리니 제일 처음 첫째를 안아주셨고 나도 반겨주셨다. 어머님의 집 밥으로 보약보다 강한 힘을 얻고 그날은 완전히 뻗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님과 김장을 시작했다. 미리 배추를 절여 건져놓으셨고 배추속 양념들도 다 만들어 놓으셨다. 첫째는 남편과 부엌 식탁의자에 앉아 시부모님과 내가 버무리는 걸 지켜보았다. 벌건 양념에 배추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아직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첫째는 김치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 날이기도 했다. 

"엄마, 이거 뭐야?"

" 응 이거 김치야, 이게 배추라는 건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밭에서 농사지으셨어. 속이 하얗고 잎이 포개져 있지. 겉은 초록색이고. 할머니랑 엄마가 이 배추에 양념을 버무려서  우리 식구 먹을 김장 김치를 만드는 거야.  우리 수빈이도 자라면 먹을 수 있어."

"이거 호해 ?"

" 어?"

"이거 호호해?"

" 아 맞아 김치 매워서 호호하면서 먹어" 

" 하머니 , 호하머니"

" 할머니 맵다고?, 매운 할머니라고?"

" 하머니, 호하머니!"

아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나를 보고는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 그래 수빈아, 오늘부터 할머니는 호할머니야, 할아버지는 호할아버지 하자 "

아버님도 버무리다 웃으시며 " 호할아버지 이름 좋은데, 우리 수빈이!"

아이 얘기를 듣다 다 함께 웃었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호칭은 호할머니, 호할아버지로 불렀다. 매운 김치를 만들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첫째가 이름을 지은 셈이다. 



며칠 전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해서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며느리와 아들, 손녀딸들을 위해 그 먼 제주에서 택배를 보내주셨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정리하는데 방에서 수업을 듣던 첫째가 나왔다. 

"김장 김치네 엄마! 제주도에서 온 거예요?"

" 어 호할머니가 할아버지랑 주변 이웃 이모님이랑 함께 만들어서 보내주셨네. 맛볼래? 엄청 맛있어"

" 그냥 엄마가 요리해 주면 먹을게요. 호할머니 솜씨는 여전하시네요" 

" 그래 맞아. 할머니한테 배워야는데 매번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셔서 감사하지" 

아직까지 호할머니로 불리는 어머님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옛날 호할머니의 모습이 이제 성년이 된 아이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구나 싶었다 . 김장김치하면 친할머니,할아버지가 떠올라 자신이 이름 지은 그 때를 기억하길. 가족의 의미를 새기는 첫째의 마음이 따뜻해지길 소망한다. 신호음이 딸각 거리며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수빈이 엄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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