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 곁에 있어야지
첫째를 임신하고 도우미 아주머니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멀리 계신 시어머님께서 첫 손주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셨다.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도 자주 들여다보시겠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결혼 전 내가 바라던 대로 사돈끼리 봄이면 고사리나 쑥을 캐러 갈 정도로 서로를 잘 챙기셔서 늘 흐뭇하고 감사하다. 아이를 보는 일도 그렇게 두 분이 서로 도우시겠다고 하니 배속에 아이가 참 복이 많구나 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과 제주라는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아이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유아기 때 아이와 엄마의 애착관계 형성이 자라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망설여졌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친할머니가 돌보는 게 객관적으로 보아도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결국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보낸 후 친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회사를 복귀하기 전 일주일을 시댁에서 보냈다. 환경이 바뀌는 걸 아는 건지 엄마랑 떨어질 걸 아는 건지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아기는 밤에도 몇 번을 깨어 울었다. 아이와 서투른 작별을 하고 시댁에 아이를 두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올라와 덩그러니 남편과 둘이 있을 때의 허전함이란. 엄마가 되는 준비를 하느라 남편과 자연분만에 좋다는 요가를 다니고 육아를 위한 책을 읽으며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매일 전화를 드렸지만 아이의 소식은 시어머님을 통해 듣는 게 다였다. 엄마 마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생각에 회사일에 더 몰두하려고 했다. 당시 이사가 예정되어 있어 짐 정리하며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아이짐 대부분을 시댁에 두고 왔기에 결혼할 때 있던 살림 정도만 신경 쓰면 되었다. 포장이사를 하고 대충 정리를 하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시댁에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는 말씀도 드릴 겸 전화를 드렸다.
"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 어, 수빈이 엄마구나. 이사는 잘했니?"
" 엥, 엄마가 왜 거기 있어? 이 시간에?"
" 그러게 말이다. 오늘은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엄마가 너희 어머님 때문에 입단속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 네? 무슨 말씀이세요?"
" 너희 어머님. 진짜 대단한 분이시다. 며칠 전에 집 곁에 있는 텃밭에 가다가 쓰러지셨다. 아기를 얼마나 고이고이 모시는지 계속 잠을 못 주무셨다는구나. 아이와 호흡을 같이 하느라 그러신다고는 하는데. 나이도 있으신데. 이웃에서 누가 오는 것도 못 오게 하시고 조용조용 아이한테 모든 걸 맞추시는 거야. 아기가 울면 힘들다고 우는소리 안 나게 얼마나 조심하시는지. 잘 못 드시고 잠도 못 주무시니 몸에 무리가 온 거지.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는데. 병원에서는 입원하라고 하는데도 너네 이사 앞뒀다며 무사히 마치면 그때 아이도 데리고 가라고 하고 본인도 병원에 가시겠다는 거야, 아이고 친정 엄마인 내가 볼 낯이 없어."
" 네에? 그래서 어머님 지금 어떠신데요? 괜찮으신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머님이 그렇게까지 몸이 안 좋으신 줄 통화할 때 전혀 눈치를 못 챘다니!, 어머님께 애를 맡겨두고 너무 안일하게 지냈던 내가 죄스러웠다.
" 아무튼 비행기 표 알아보고 내일 내려와서 수빈이 데리고 가. 어머니도 내일 병원에 입원하실 거야"
" 알았어요. 어머님은 통화가 안 되시는 거예요?"
" 아이고 겨우 버티고 계셔. 기운도 없으시고"
"엄마는 못난 며느리 만들지 말고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어머님이랑 아기랑 오늘 밤 잘 지내셔요"
전화기 사이로 동네 이웃분들이 계시는지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남편과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주말이라 좌석 구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기로 했다. 새로 이사한 집도 낯설었고 어머님의 상황, 아이는 어떤지 여러 가지 생각에 뜬눈으로 날을 새웠다.
다음날 일찍 공항으로 가니 겨우 좌석을 구할 수 있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친정엄마와 통화하니 시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으니 그리고 직접 오라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다만 응급처치실이었는지 병실인지 모르는 곳에 들어가니 코에 튜브를 꽂고 얼마 전에 뵈었을 때보다 핼쑥한 어머님이 보였다. 어머님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너무 죄스러워서 뭐라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예전 건강한 어머님은 온 데가 데 없고 너무나 야위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어머님이 계셨다. 친척분들과 시아버님이 곁에 계셨다. 어머님 곁으로 가 손을 잡았다.
" 수빈 엄마야, 미안하다. 수빈이가 엄마 곁에 가고 싶은가 봐, 그럼 아이는 엄마 곁에 있어야지. 나는 걱정 말고 어서 집에 가서 수빈이 데리고 서울 가라 괜찮아질 거야. 울지 말아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울음이 북받쳐올라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렸다. 어머님, 아버님, 친척분들 볼 낯이 없었다. 시아버님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왔고 아버님은 내 손을 꼭 잡고 택시 잡는 데까지 아무 말 없이 걸어 나왔다.
"많이 놀랐지. 집에 가면 친정어머니가 아기 보고 계실 거야. 걱정 말고 아기 데리고 서울 가. 필요한 짐은 나중에 택배로 보내주마."
" 죄송해요. 아버님,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버님도 애 많이 쓰셨어요. 무슨 일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어느새 아버님의 눈도 그렁그렁 해졌다. 택시가 왔고 나는 아이에게로 갔다. 시댁에 가보니 친정 엄마와 어머님의 언니 그러니까 이모님이 함께 아이를 보고 계셨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아이를 보니 아이는 새근새근 자고 있다.
"친할머니가 아픈 줄도 모르고 아기는 잘 자라고 있어. 너희 어머님이 극진한 정성으로 보살피니 살도 많이 오르고 건강해. 비행기표 알아보니 오후에 바로 있더라. 엄마랑 함께 올라가자"
그렇게 첫째는 엄마 곁으로 왔다. 도우미 할머니를 구하고 친정엄마는 내려가셨다. 다행히 위급한 상황을 잘 넘기신 어머님은 호흡곤란 증세가 좋아지셨고 얼마 후 퇴원하시고 통원치료를 받으셨다. 물론 지금은 건강하시다. 늘 든든한 할머니와 어머님으로!
지금도 첫째를 볼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어머님이 몸을 사르며 넘치는 사랑을 받은 아이! 벌써 20년도 전의 일이지만 언제고 떠올려도 가슴이 내려앉는 아찔한 순간이다. 동시에 시어머님의 배려와 사랑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