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씨네큐브
거대한 조각상을 찾아오면 돼!
2005년, 약속시간에 빠듯하게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큰 세종대로를 바라보며 패닉에 빠졌다.
'와... 서울에 이렇게 큰 대로가 있다니.. 너무 멋있잖아.. 잠깐만, 저게 광화문? 그럼 여기서 왼쪽이라고 했나? 아 오른쪽인가?'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 주변을 제외한 서울 지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선배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나의 본능을 믿고 냅다 오른쪽으로 뛰었다.
'쭉 오다 보면 거대한 조각상이 보일 거야 그 건물 지하로 내려오면 돼'
나는 선배가 예전에 일러준 대로 거대한 조각상이 곧 나오리라는 기대로 미어캣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뛰었고, 어느새 종각역 앞 영풍문고까지 도착했다.
"음..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그때 전화가 왔다.
"야 너 어디야?!"
"지금 가고 있어요! 근데 영풍문고 지나서 가야 돼요?"
"영풍문고? 너 어디로 간 거니?"
"그 종각역 방향으로...."
"이 멍청아 그 반대방향이야!"
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절대로 저렇게 헤매지 않았을 텐데!
나는 다시 부리나케 뛰었다. 광화문역을 다시 지나쳐 계속 헐레벌떡 뛰어가며 굽어지는 길에 들어서자 저 멀리 거대한 망치를 든 정말로 거대한 건물 5층 높이는 훌쩍 넘을 조각상이 보였다. 정말 인상적인 크고 강렬한 검은색의 그 조각상. 이 건물의 위치를 설명하기에 저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으리라.
'아... 난 저걸 종각역 가서 찾고 있었구나'
그래도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숨을 돌리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지하로 내려가자, 그날 영화를 같이 보기로 했던 일행들은 이미 시작시간에 맞추어 들어갔고, 후배만 표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후배에게 사죄하고 우리는 어두운 극장을 더듬어 우리의 자리에 앉았다.
그때 우리들이 다 같이 봤던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
집 근처 CGV에 걸리는 영화만 보던 나에게 이런 영화도 있다는 충격과 함께,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단출한 예술영화 전용관이 주는 감흥은 20대의 나에게 묘한 흥분을 가져왔다.
숨죽인듯한 고요함, 팝콘과 콜라를 씹고 넘기는 소리 따위는 없었다.
사람들은 몸을 의자 깊숙이 밀어 넣고 뚫어져라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순한 유흥거리로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어떻게든 흡수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들의 예민함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던 느낌이랄까.
그리고 영화의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암전 상태로 끝까지 자리에 앉아있는 관람문화는 그것을 함께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감정을 고양시켰다.
안타깝지만 옆자리의 후배는 한번 잠들더니 깨어나지 못했고 이 길고 어려운 영화를 끝까지 완주해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살짝 자부심이 감돌았다.
긴 세월 지나며 영화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 느낌만 매우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일행들과 계단을 함께 올라오며 웃고 떠들고 서로 타박하고 시끄럽게 목소리 높이다가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광화문의 밤하늘과 낮보다 산뜻해진 저녁 공기에 다들 설레서 무교동까지 한달음에 걸어가 신나게 뒤풀이를 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광화문은 영화를 보고 나와 수백 년 된 궁의 돌담길을 걸은 뒤 역사가 깃들은 골목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씨네큐브를 방문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씨네큐브를 떠올릴 때면 이때의 기억만 유일하게 내 마음속에 떠오른다. 영화 한번 보겠다고 광화문을 좌충우돌 뛰어다니던 대학생은 이제 없지만, 아직 씨네큐브는 그곳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조각상도.
스마트폰 시대에 이제는 그때 나처럼 길을 헤매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서 씨네큐브를 누군가에게 일러줄 때, '조각상을 찾아오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없겠지만 그래서 더욱 씨네큐브 하면 그 조각상이 생각난다. 극장과 전혀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그 극장에서 약속을 잡게 된다면 꼭 조각상을 찾아오라고 말해보고 싶다.
지금의 코로나 시대가 지나면, 일부러라도 씨네큐브 앞에서 약속을 잡아봐야겠다.
때는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좋겠다. 덤으로 영화를 보고 나와 광화문의 밤거리를 걷는 설렘 가득한 누군가를 지켜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