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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Jul 11. 2020

난생처음 서핑을 배운 여자

근력과 지구력은 필수

  여자인 친구 둘과 강원도 여행을 갔다. 첫날의 일정은 서핑 배우기다. 푸른 하늘 아래 빛나는 바다, 날씨마저 완벽했던 그 날 복장까지 준비가 완료되었다. 초보자에게 멋이란 없다. 살갗이 쓸리지 않고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해녀복 전신 슈트,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우리는 강원도의 해녀가 되어 해변으로 보드를 들고 걸어 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당황스러웠다. 보드가 생각보다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게 가장 안전하고 난이도가 쉬운 보드라고 말씀하셨다.


 나름 요가  필라테스 인생 N연차였다. 평균 사람보다는 운동신경이 좋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은  도토리묵 주먹으로 묵살 나듯 무너졌다. 신은 나에게 유연성을 주고 근력은 앗아갔나 보다. 나는 조금의 타고난 유연성과 가벼움으로 모래 위에서 PUSH-UP 동작을 제일 빨리 익혔지만, 결국 서핑을 배운 첫날 파도 위를  발로  멋지게 미끄러지던 사람은  사람  A양뿐이었다.


일단, 두 발로 일어서야 해.
중심은 일어나는 순간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때문에 잡게 돼있어.

 A가 자신의 중심잡기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도 나에게 두 발을 더 빨리 보드에 붙여야 더 잘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가 머뭇거리느냐고 일어서는 과정이 느려서 중심을 잃는 것이라 한다. 나는 더 잘 서려고 시간을 들여 타이밍을 간본 건데, 파도 위에서는 그저 다음 단계로 나아감을 방해하는 주저함일 뿐이었다. 양 발을 보드에 붙이고 1초 정도 서있던 때가 딱 두 번 있었는데, 그때는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고 파도를 뚫고 다시는 바다로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더 과감해진 순간이었다.


 A는 우리 중 영광의 상처를 가장 많이 얻고 갔다. 제일 잘 탔던 만큼 제일 과감했다. 온몸이 시퍼런 멍 투성이가 되었고, 여러 번 보드와 함께 뒤집혀 파도로부터 김치 싸대기 못지않은 귓방망이를 맞았다. 나는 계속해서 나보다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돌진하는 두 친구를 뒤에서 보며 나의 약한 체력에 열등감을 느꼈다. 파도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나의 신체적 약점을 상기시켰고, 내가 자연 앞에 수없이 휩쓸리는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느끼게 했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머릿속으로 그 단어를 떠올리는 경험, 내가 작아진 만큼 다른 사람은 커지는 비교의 경험이 간만이었다. 부끄러웠지만 내가 부끄러운 만큼 옆사람의 뿌듯함은 커진다는 생각에 굳이 열등감을 숨기지 않고 더 크게 환호하고 손뼉 쳐주었다. 나 또한 분명히 누군가의 열등감을 양지삼아 우월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는 멀리 봤을 때 하늘을 닮은 파란색이었으나, 가까이 봤을 때는 초록색의 헐크 같았다.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위대한 자연 위에 서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다면 서핑을 추천한다. 결국 3초 이상 보드 위에 서지 못한 나는 팔근육을 더 키워오기로, 친구 B는 팔근육이 들어 올려야 하는 몸의 무게를 더 줄여오기로 다음 서핑을 기약했다. 모두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연거푸 콧물과 침을 뱉어댔는데도, 그 물을 향해 열심히 헤엄쳐 들어가던 아이 같은 무모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꼭 한번 서보겠다고 오기에 가득 찬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던 화장끼 없는 맨 얼굴들이 7월의 햇빛 아래 물비늘처럼 기억 속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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