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약탈자, 스니크플레이션을 말하다

by 건강한 오후

길을 걷다 문득,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 값이 오른 걸 깨닫는다. 4,500원이던 컵이 어느새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요구한다. 빵집 진열대의 소보루는 여전히 3천 원이지만 손안의 무게는 가볍고, 라면은 몇 달에 한 번씩 100원씩 올라 소리 없이 200원이 더해졌다. 버거에서 치즈 한 장이 사라진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가격은 멈춘 듯 보이지만, 우리 지갑은 매일 살금살금 털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스니크플레이션(sneakflation)’이다.


1. 내 빵만 작아진 게 아니었다


스니크플레이션은 세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첫째,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인다. 과자 봉지 속 질소처럼 우리 눈을 속인다. 둘째, 한 번에 크게 올리는 대신, 잊을 만하면 조금씩 자주 올린다.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가격과 용량은 유지하되 원재료나 성분을 은근슬쩍 바꾼다.


이토록 다채로운 얼굴의 약탈자가 일상에 숨어들지만, 우리는 별다른 저항 없이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어차피 다 오르잖아.”


2. 모두가 공범인, ‘침묵의 카르텔’


바로 그 체념이 문제다. 소비자가 입을 다물면 기업은 더 대담해지고, 정부는 “조용하니 괜찮겠지”라는 착각에 빠진다. 누군가 일부러 담합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그 침묵 자체가 거대한 ‘담합의 카르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눈 뜨고 당하면서도, 당하는 줄 모르는 연극 속에 앉아 있는 셈이다.


3. 소리 없이 지갑을 파고드는 불평등


스니크플레이션의 부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소득에 역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연간 추가 지출액을 추산해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다. 월 소득 200만 원 가구는 약 48만 원(소득의 2.0%)이 추가 지출되지만, 월 300만 원 가구는 36만 원(1.0%), 월 500만 원 가구는 30만 원(0.5%) 수준에 그친다.


가난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구조. 우리의 침묵은 단순한 개인의 체념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장치가 된다.


4. 체념을 넘어 ‘증거’를 기록하라


해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물론 정부는 피부에 와닿는 ‘생활물가 체감지수’를 발표하고, 필수재 가격 급등 시 ‘물가 청문회’를 여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 역시 가격 인상 전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에게 있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 앱을 켜고 매주 같은 품목의 가격을 기록해보자. 라면·우유·계란·사과·빵. 단 다섯 가지 품목이라도 좋다. 매주 화요일, 같은 마트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한 달만 지나도 이 기록은 막연한 체념이 아닌, 날카로운 ‘증거’가 된다. “다 올랐다”는 한숨이 “이건 분명 이상하다”는 명확한 목소리로 바뀔 수 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스니크플레이션은 살금살금 다가와 우리 일상을 잠식한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은밀함은 깨진다. ‘스니크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을 아는 것, 나의 소비를 기록하는 것, 그리고 이것에 대해 주변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첫 번째 저항이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릴 힘은 결국, 평범한 우리의 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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