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학번의 기억에서 네팔의 청년까지
9월의 어느 저녁, 네팔 정부가 SNS 26개를 차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 속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멈췄다. 휴대폰 불빛을 든 채 구호를 외치는 한 청년의 눈빛에서, 나는 39년 전 내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교정의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되살아났다. 종이의 서늘한 떨림을 손끝에 느끼던 그날, 나는 한 장의 유인물을 움켜쥐고 있었다. 옷감마다 스며든 냄새는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고, 그 냄새는 절망이자 동시에 이상하게도 희망의 온기였다.
1986년의 대학 교정은 늘 긴장으로 가득했다. 도서관 앞에서 쪽지를 건네던 선배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떨림이 우리를 더 단단히 묶어주었다. 어둠 속 골목에서 나눈 속삭임, 곤봉에 쫓기며 서로의 팔을 움켜쥐던 순간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눈빛 하나가 가장 빠른 네트워크였다. 권력은 언론을 틀어쥐고 진실을 가뒀지만, 우리는 종이 한 장, 전화 한 통, 작은 모임으로 서로를 연결했다. 그 연결망은 결국 광장으로 터져 나왔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때의 연결망은 승리했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연결망이 끊어지고 있었다.
2025년 9월, 네팔 정부는 "거짓 정보의 온상"이라며 SNS를 막아버렸다. 청년들의 분노는 곧장 거리로 번졌다. 해외 노동자 220만 명이 가족에게 보내던 메시지가 끊기고, 청년들이 생계를 이어가던 창구가 닫히자 70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졌다. 상류층 자녀들이 올린 호화스러운 사진은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고, 20%를 넘는 청년 실업률은 분노의 불씨였다.
나는 그 사진 속 청년을 보며 상상했다. 휴대폰을 높이 쳐든 그의 손끝에도, 그 옛날 내가 움켜쥔 유인물의 떨림이 겹쳐지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최루탄과 곤봉에 맞섰듯, 그들은 검열과 차단에 맞서고 있었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절망의 무게와 자유를 향한 갈망은 똑같았다.
역사는 묻는다. 아랍의 봄은 왜 좌절되었는가. 튀니지에서 불붙은 민주화의 불길은 SNS를 타고 이집트, 리비아, 예멘으로 번졌지만, 끝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네팔의 봄은 그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1987년의 봄도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독재는 물러났지만, 불평등과 부패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쟁취하면 끝나는 결승점이 아니라, 세대마다 다시 써야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봄을 살았고, 네팔의 청년들은 디지털 시대의 봄을 살고 있다. 언론 통제와 SNS 차단, 유인물과 스마트폰, 눈빛과 네트워크. 억압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날로그의 봄을 살았던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 기억을, 차단과 검열을 뚫고 진실을 전했던 그 경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봄이 좌절되지 않도록 함께 지켜보는 것. 세대와 국경을 넘어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지난 13일, 네팔은 임시 총리를 세우고 내년 3월 조기 총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빈곤과 부패,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 약속은 허공에 머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다. 미완의 봄이기에,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최루탄 연기 속에서 내가 느꼈던 희망은, 오늘 차단된 SNS 너머에서 서로를 찾는 네팔 청년들의 의지 속에 다시 살아난다. 그 연기 사이로 서로의 눈을 확인했듯, 그들 역시 차단된 네트워크 너머에서 기어코 서로를 찾아낼 것이다. 봄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