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경계 밖에 선 사람

『이주하는 인류』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1부. 명함 없는 사람, 국적 없는 영혼

은퇴 후 석 달쯤 지났을 때, 고등학교 동기의 경찰서장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에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 사이로 자기소개가 돌아왔다. “여전히 금융권에 있습니다.”, “작년에 이사 달았네.”, “스타트업 하나 운영 중이야.” 차례가 내게 왔다.


“나는… 최근에 은퇴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25년간 나를 증명했던 회사 이름과 직함이라는 '신분증'이 사라지자, 나는 마치 국적을 잃은 사람처럼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날 밤, 샘 밀러의 『이주하는 인류』를 읽고 있었다. 한 문장이 눈에 박혔다. “인류의 본질은 이동에 있다. 우리는 원래 한 곳에 머무르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그 순간, 회사라는 ‘국가’에서 추방당한 듯한 나의 상실감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추방이 아니라 이주이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2부. 7만 년의 여정, 정착은 착각이었다


밀러는 묻는다. 인류는 언제부터 한 곳에 정착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그의 답은 명확하다. 인류는 결코 정착한 적이 없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며, 때로는 빙하를 넘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농경이 시작된 후에도 인류는 멈추지 않았다. 곡물을 따라 이동했고, 무역로를 따라 문명을 교환했으며, 전쟁과 기후 변화에 떠밀려 끊임없이 경계를 넘었다. 이주는 예외가 아니라 인류의 기본값이었다.


책을 읽다가 지난 25년을 떠올렸다. 나는 한 회사에 '정착'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입사 첫해의 신입사원, 5년 차의 대리, 10년 차의 과장, 20년 차의 부장. 나는 같은 회사 안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부서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웠고, 직급이 오를 때마다 다른 정체성을 입었다. 나는 이미 25년간 수십 번의 내면의 이주를 경험한 셈이었다.


정착이란 환상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 중이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


3부. 경계 밖에 선 자의 두려움


밀러는 현대 사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국경은 인간이 그은 선일뿐인데, 우리는 그 선 밖의 사람들을 '타자'로 규정한다. 이주민은 환영받지 못한 손님, 위협, 불안의 원천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주민 없이 현대 도시는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노동자의 손으로 세워진 두바이의 마천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주 노동력은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창밖을 보았다. 나 역시 지금 경계 밖에 서 있는 사람이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순간, 나는 사회적 지도에서 희미해진 존재가 되었다. "요즘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사람. 생산성으로 측정되지 않는 시간을 사는 사람. 나는 마치 비자 없이 낯선 나라에 머무는 이주민처럼, '일상'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어색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두려웠다. 소속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하지만 밀러는 말한다. 이주는 위기가 아니라 희망의 씨앗이라고. 경계를 넘는 자들이야말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낡은 질서를 흔들며, 세계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그렇다면 나의 이 불안도,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직전의 징후는 아닐까?


4부. 이동하는 존재로 산다는 것


은퇴는 종착역이 아니었다. 새로운 이주의 시작이었다.


이주민이 새로운 땅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듯, 나도 지금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있다. 아침 커피를 내리는 의식,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 이름 모를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 이것은 내가 이 낯선 일상에서 새롭게 배우고 있는 문법이다.


밀러가 말했듯, 이주민은 두 세계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K-pop이 국경을 거슬러 전 세계로 퍼져나가 역이주의 흐름을 만들었듯,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주하며 변화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전 회사원'이 아니다. 나는 회사와 은퇴 사이에서, 숫자와 언어 사이에서, 소속과 자유 사이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이주민이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주하며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임을.


경계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 그은 선일뿐이다. 나는 이제 그 선을 지우기로 했다. 회사원과 은퇴자 사이의 선, 생산성과 무용함 사이의 선, 소속과 방황 사이의 선. 그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진다.


진주에서 왔고, 한반도에 살며, 유전자 안에 있고, 수치심을 느끼며, 이제 경계를 넘는다. 이 모든 것이 조건이자 여정이다. 하지만 조건을 알기에, 여정을 선택할 수 있다.


138억 년 전, 별은 우리 몸을 이룰 원소를 만들었다. 7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회사라는 모국을 떠나 나만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동하는 존재로 산다는 것. 그것이 인류의 본질이라면, 은퇴 후의 나 역시 그 거대한 흐름 속에 있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