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같은 주파수를 듣던 시간

개인화 시대, 사라진 집단적 청취

by 건강한 오후

밤 열 시가 되면 나는 라디오 앞에 앉았다.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며 주파수를 맞췄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DJ의 목소리가 또렷해질 때까지. 안테나 각도를 조금씩 바꿔가며 가장 선명한 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하나의 의례였다. 그 시간,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루 한가운데 놓인 큰 라디오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듣던 저녁도 기억난다. 연속극 시간이 되면 다른 모든 일을 멈추고 그 앞에 모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때로는 웃고, 때로는 숨을 죽였다. 그 30분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함께 빠져들었고, 끝나고 나면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다.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장치였다. 같은 시간, 같은 주파수에서 만나는 수만 명의 청취자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목소리를 듣고, 같은 음악에 귀 기울이며, 같은 감정을 나누었다. DJ가 "지금 이 시간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라고 말할 때, 정말로 우리는 함께 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춰 추천해 주는 음악, 내가 구독한 팟캐스트, 내가 선택한 채널. 모든 것이 개인화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풍요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를 듣지 않는다.


팟캐스트가 라디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것은 근복적으로 다르다. 팟캐스트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고른 내용을, 나만의 속도로 듣는 것이다. 반면 라디오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모두가 함께 듣는 것이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공동체적 경험과 개인적 선택이라는 근본적인 차이다.


흥미롭게도 최근 젊은 세대들이 다시 라디오를 찾고 있다. MBC 라디오 앱 다운로드가 꾸준히 증가하고, 유튜브의 라디오 채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찾는 것은 '라디오 형식의 콘텐츠'이지, 모두가 동시에 듣는 그 특별한 경험은 아니다.


라디오 속 DJ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음악을 틀어주고, 날씨를 알려주고,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어주었다. 그 생생함과 동시성이 라디오만의 매력이었다. 녹음된 콘텐츠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라디오라는 매체가 아니라, 같은 순간을 경험하는 집단적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각자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지금, 잠시 다이얼을 돌려 어딘가의 주파수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여전히 모두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흐른다.



에필로그


오늘도 나는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단 한 장도 기억하지 못한다.


일주일을 기다려 받아 든 사진 한 장, A면이 끝나면 테이프를 뒤집어야 했던 번거로움, 삼일 후에야 도착할 편지에 담았던 신중한 말들. 그 불편함 속에 있던 것은 기다림이었고, 기다림 속에 있던 것은 간절함이었다.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하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빠른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속도를 늦출 수 있는지 스스로 묻는 일이다.


필름 카메라를 꺼내보았다. 남은 필름은 열두 장. 오늘은 딱 한 장만 찍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기 전 한참을 망설였다. 이 순간이 정말 담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창밖 풍경 한 장을 남겼다.


일주일 후 찾아갈 그 사진이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 흐릿할 수도, 노출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조차 내 시간의 일부가 될 것이다.


사진을 한 장만 찍어본다.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