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정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가

by 건강한 오후

당신의 책상은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돼 있나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파일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으면 앤지 불안해지지 않으시나요? 우리는 모두 절리를 좋아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정리하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서랍을 깔끔하게 나누고, 파일을 폴더별로 분류하며, 지나온 인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기억합니다. 이런 질서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질서가 허상이라면 어떨까요?


질서에 사로잡힌 과학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 과학자의 기이한 삶을 통해 이런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19세기말 미국의 어류학자였던 그에게 분류는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혼돈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임무"였지요.


그의 연구실에는 수천 개의 표본병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각각의 병에는 정확한 학명이 붙어있었고, 그는 이 작은 세계를 통해 자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은퇴 후, 수십 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서재를 정리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낡은 책 등을 연대순으로 맞추고 빛바랜 노트를 주제별로 묶으며 느꼈던 그 뿌듯함. 그것은 흩어진 내 삶의 조각들을 마침내 제자리에 끼워 맞추는 듯한, 일종의 안도감이었습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는 스스로를 향한 위로이자, 혼돈스러운 세월에 내가 부여한 질서였지요.


하지만 조던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가 단 하루 만에 유리 파편으로 흩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던은 달랐습니다. 마치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리는 시지프처럼,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분류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물고기'라는 허상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충격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무슨 뜻일까요?


현대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생물들은 사실 하나의 그룹이 아닙니다. 참치는 상어보다 인간에게 더 가깝고, 폐어는 개구리와 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즉, '물고기'라는 분류는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인위적 구분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빨간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과, 자동차, 셔츠를 한 묶음으로 분류하는 것과 같습니다. 편의상 만든 구분이지,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른 분류들은 어떨까요? '성공', '행복', '사랑'이라는 개념들도 사실은 편의상 만든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까요?


질서가 폭력이 될 때


우리가 믿는 세상의 질서가 이토록 허약한 것이라면, 그 질서를 지키려는 인간의 욕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조던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위험한 길로 접어듭니다.


분류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연을 넘어 인간 사회로 향했습니다. 그는 우생학을 신봉했습니다. 인간을 '우수한' 종족과 '열등한' 종족으로 나누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인간은 물고기 표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능력과 가치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지식과 분류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조차도 결국 특정한 관점과 편견을 담고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정답'을 강요하는 것의 위험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혼돈을 받아들이기


책의 저자 룰루 밀러는 조던의 삶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줍니다. 사랑의 실패,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그녀 역시 무언가 확실한 것, 분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조던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깨닫습니다. 완벽한 질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강요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몇 해 전, 지나온 삶을 결산이라도 하듯 정리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후회를 명확한 선으로 나누려 애썼지요. 하지만 선을 그을수록 삶의 모순들이 드러났습니다. 가장 큰 실패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고, 가장 빛나던 성공의 기억 뒤엔 쓸쓸한 그늘이 있었습니다. 삶은 결코 깔끔한 대차대조표로 정리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에서, 저는 비로소 질서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언제 '모르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나요? 대신 그녀는 혼돈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 머무르기를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정리할 수 없어도 괜찮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의미는 만들어진다.


질문하는 삶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운 선언이 아니라, 끝없는 탐구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조던이 남긴 수많은 표본들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 질문,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완벽한 답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과정이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고, 모든 것은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질문하고, 시도하고, 연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듭니다.


'물고기'라는 분류가 무너진 바다가 텅 비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요롭고 신비로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남강의 풍경도 그렇습니다. 강변의 이름 모를 들꽃과 스쳐 가는 사람들은 굳이 분류하고 정의하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붙인 이름들이 언젠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열망과 노력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의 질문이 되어 이어질 것입니다. 완벽한 질서 대신 불완전한 연결을, 확실한 답 대신 의미 있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혼돈의 세상을 건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지도가 아닐까요.


오늘, 당신의 책상 위 혹은 마음속 어떤 질서를 가만히 허물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