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 먹자골목

시간이 올린 값, 추억이 내린 값

by 건강한 오후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마흔 해가 된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나를 보며, 문득 그 시절 내가 자주 찾던 '먹자골목'이 떠올랐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몰래 빠져나가던 시절, 내 발걸음은 늘 중앙시장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1,800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였다. 교실마다 빼곡했고, 복도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실에 남아 책을 펼쳤지만, 나와 몇몇은 달랐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저녁 공기가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는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담을 넘거나 정문을 당당히 걸어 나가거나, 방법은 달랐지만 목적지는 같았다. 바로 중앙시장 먹자골목이었다.


그때 순대 한 접시 500원, 잡채 한 접시 500원, 소주 한병도 500원이었다. 2천이면 세 명이 소주 두 병에 안주 두 접시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소주는 '무학'과 '진로' 두 종류가 있었는데, 무학은 지역 소주, 진로는 전국구였다. 단골이 아니면 무학을 마셔야 했지만, 진로가 손에 들어오면 왠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진로도 이제는 맥주회사 하이트에 인수되었다. 전국구의 자존심도, 시간 앞에서는 주인이 바뀌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을, 소주 한 병이 가르쳐주었다.


골목은 좁았고, 가게는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기름 냄새와 고춧가루 냄새, 막걸리 냄새가 뒤섞여 골목 전체를 감쌌다.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욕설, 주인아주머니의 호통이 어우러져 묘한 생명력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소란 속에서 어른 흉내를 냈다.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다 아는 듯 떠들었다. 술기운에 오르락내리락하던 목소리, 젓가락이 부딪히던 소리, 고소한 순대 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남아 있다.


가끔 선생님에게 걸려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일종의 통과의례 같았다. 벌을 서고, 청소를 하고, 다시 골목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먹자골목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의 공간이었고, 일탈의 상징이었으며, 청춘의 놀이터였다.


세월은 흘러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누군가는 서울로, 누군가는 부산으로, 또 누군가는 고향에 남았다. 만남은 뜸해졌고, 연락은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봄, 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동창회 모임이 잡혔고, 오랜 친구 둘과 함께 다시 그 골목을 찾기로 했다.


우리는 약속 장소인 중앙시장 입구에서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백발이 섞인 머리, 두툼해진 배, 깊어진 주름. 하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그때 그 소년들이었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간판 '뉴-먹자골목 SINCE 1984'가 보였다. 골목은 여전히 좁았지만, 포장은 깨끗했고, 가게들은 현대식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남아 있어, 우리는 금방 예전에 자주 가던 가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주름진 얼굴의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예전 그 아주머니는 아니었다.


"엄마가 하시던 가게라예. 제가 물려받아서 하고 있어예."


아주머니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시간은 우리만 늙게 한 게 아니었다. 그 골목도, 그 가게도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었다.


순대와 잡채 한 접시가 이제는 5천 원. 정확히 열 배가 되었지만, 접시에 담긴 따끈한 김과 소박한 맛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소주잔을 채우며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야, 우리 여기서 시험공부는 한 문제도 안 했지?" 친구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 근데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맞아. 걱정도 없었고, 미래도 막연했지만, 그냥 오늘이 재미있으면 그만이었잖아."


우리는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마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떠들었다. 시간을 통과해 나오면서 모서리가 깎이고 단단해진 말들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소주 서너 병을 비웠고, 예전처럼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혼자 골목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젊은 연인들, 회사원들, 그리고 우리 같은 중년의 남자들. 각자의 이유로 그곳을 찾고, 각자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술잔을 부딪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값은 오를 수 있지만, 추억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것을. 먹자골목은 단순한 골목이 아니었다. 청춘의 향기이자, 자유의 상징이며, 아직도 이어지는 우정의 자리였다.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이곳에서, 우리는 잔을 부딪칠 것이다. 지나가는 것들이 지나간 뒤에도 지나가지 않는 것들은 남아 있다. 많은 것들이 지나간 뒤에야 지나가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시간이 올린 값은 숫자에 불과했지만, 추억이 내린 값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