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여백

쓸모의 시대를 지나, 질문의 시간으로

by 건강한 오후

프롤로그



명함을 버리던 날


서랍을 열자 명함 한 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300장쯤 남았을 것이다. 나는 한 장을 꺼내 들었다. '○○○○ ○○ ○○○'. 25년이 이 활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매일 아침 7시 출근, 밤 10시 퇴근. 분기 실적, 연간 목표, 직원 평가 점수. 모든 것이 측정 가능했고, 그래서 나는 안전했다. 숫자가 내 정체성이었고, 마감 시간은 내 심장이 뛰는 리듬이었다.


명함을 한 줌씩 휴지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중간쯤 손이 멈췄다. 25년의 무게가 있다면 이 종이 조각 무게 정도일까. 나는 결국 그날 절반을 버리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왔다. 아직도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마지막 출근 날의 기록이었다.


여백의 시작


그로부터 몇 주가 흘렀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맞는 오후 6시는,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익숙한 루틴이 사라지자, 나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난 행성처럼 방향을 잃었다. 텅 빈 시간표를 메우려 했지만,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랐다.


그때 나는 책장 앞에 섰다. 오래된 책들이 먼지를 쌓은 채 꽂혀 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책을 빠르게 읽었다. 핵심을 요약하고, 쓸모 있는 부분만 밑줄 그었다. 교양으로, 자기 계발로, 때로는 명함 뒷면에 적을 한 줄의 지혜를 얻기 위해. 책은 내게 도구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도구가 필요 없었다. 쓸 곳이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장 써먹을 수 없는 우주론, 먼 옛날의 인류사,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세계, 언젠가 맞이할 죽음에 대한 철학.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승진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저 궁금해서 읽는 책들. 놀랍게도, 이 쓸모없는 지식들이 내게 가장 쓸모 있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다시 읽는 세상


어느 가을밤, 나는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희미한 별 몇 개가 검은 하늘에 박혀 있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뒤였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손을 이루는 철 원자가 수십억 년 전 별의 폭발에서 왔다는 것을.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모래, 소금, 철 같은 보이지 않는 물질들로 떠받쳐지고 있다는 것을. 인류 문명의 불평등이 지능이 아니라 지리와 생물학의 우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25년간 쌓아온 지식은 세상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다시 읽는 책들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관리는 정답을 요구하지만, 이해는 질문을 낳는다. "나는 왜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명함 속 직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지식과 지식 사이, 책과 책 사이, 그 여백에서 진짜 배움이 시작되었다.


이 여정에 대하여


이 연재는 은퇴 이후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비문학 독서 에세이다. 나는 10권의 책을 통해 우주에서 시작해 인류를, 물질을, 생명을,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과학책도 삶의 이야기로, 철학책도 일상의 언어로 읽을 것이다. 이 글은 전문가의 서평이 아니다. 한 사람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별을 올려다보며,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과정의 기록이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질문들의 연속이다.


젊을 때는 지식을 쫓았다. 이제는 그 지식이 남긴 여백을 본다.


여백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