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정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1부. 서재를 정리하던 날, 질서라는 위안


은퇴 직후, 나는 서재를 정리하기로 했다. 지난 25년의 희로애락이 담긴 상자들을 열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낡은 책 등을 연대순으로 맞추고, 빛바랜 노트를 주제별로 묶었다. 업무 관련 자료는 폐기할 것과 보관할 것으로, 취미로 읽던 책들은 문학과 비문학으로. 서랍을 나누고 파일을 분류하며, 지나온 인생에 명확한 구획을 나누었다.


그 작업은 기묘한 위안을 주었다. 흩어진 내 삶의 조각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분류된 과거는 안전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는 스스로를 향한 위로였고, 혼돈스러운 세월에 내가 부여한 질서였다. 이런 질서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젖는다.


하지만 정리를 마치고 완벽하게 정돈된 서재를 바라보았을 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잘 쓰인 부고(訃告)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지만,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질서는 진짜일까? 내가 만든 이 분류가 삶의 본질을 제대로 담고 있는 걸까?


그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애써 쌓아 올린 질서가 한낱 허상일지 모른다는 섬뜩한 질문과 마주했다.


2부. 질서에 대한 집착,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 책은 한 과학자의 기이한 삶을 통해 질서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해부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19세기말 미국의 어류학자였던 그에게 분류는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었다. 그에게 자연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복해야 할 혼돈이었다. 분류는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임무였다.


그의 연구실에는 수천 개의 표본병이 줄지어 있었다. 각각의 병에는 정확한 학명이 붙어 있었고, 그는 이 작은 세계를 통해 자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내가 정리된 서재를 보며 내 인생을 이해했다고 믿었던 것처럼.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조던은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마치 바위를 산 위로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시지프처럼,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분류 작업에 매달렸다. 바닥에 흩어진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집어 올리며, 기억을 더듬어 다시 이름을 붙였다. 어떤 물고기는 몸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학명표를 꿰매기까지 했다. 질서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혼돈은 용납할 수 없다는 무서운 집념이었다.


3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의 배신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조던의 평생을 바친 집념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우리가 통칭 ‘물고기’라고 부르는 생물들은 사실 하나의 그룹으로 묶일 수 없다. 유전적으로 참치는 상어보다 인간에게 더 가깝고, 폐어는 도롱뇽과 더 가깝다. 즉, ‘물고기’라는 분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인위적 구분일 뿐, 과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허상이다. 조던이 평생을 바쳐 지키려 한 질서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질서였다.


책을 덮고 서재를 다시 바라봤다. 내가 나눈 성공과 실패, 기쁨과 후회의 경계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혹시 나도 조던처럼, 존재하지 않는 질서를 억지로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질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조던의 삶은 섬뜩하게 증명한다. 분류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연을 넘어 인간 사회로 향했다. 그는 우생학 운동의 선두에 섰다. 스탠퍼드 대학 총장이 된 후,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강제 불임을 지지했다. 물고기 표본을 분류하던 그 손으로, 그는 ‘열등한’ 인간을 분류하고 사회에서 제거하려 했다. 그가 물고기 표본에 매달았던 이름표는, 인간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다.


4부. 혼돈을 껴안는 삶


책을 덮었을 때, 나는 해답이 아니라 더 큰 질문을 얻었다. 완벽한 질서를 향한 욕망이 폭력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저자 룰루 밀러는 혼돈을 피하는 대신 그 속에 머무르기로 선택한다.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망이 아니라 자유로 받아들인다.


요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남강변을 달리며 이름 모를 들꽃들을 본다. 예전 같았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이름을 검색하고, ‘잡초’와 ‘야생화’로 분류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바라본다. 이름이 없어도, 나의 분류표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존재는 조금도 축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서재로 돌아왔다. 완벽하게 연대순으로 꽂혀 있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무심코 꺼내 읽고, 아무 데나 꽂아둔다. 어제 읽던 과학책 옆에 오늘 펼친 시집이 놓인다. 이 작은 혼돈, 이 불완전함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 듯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아도 바다는 여전히 신비롭다. 내 삶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는 없어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어쩌면 진짜 질서란 완성된 지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길을 묻는 그 과정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