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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k Review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by 최창규 CK

머리를 빡빡 깎았다.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매일 코피를 흘렸다.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보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끝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흔한 수험생활이자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온통 까만 절망의 시공간 속에 있었다. 그 시절 붙잡고 버텼던 나의 우상은 단명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거의 없는 두 사람, 전혜린(1934~1965)과 구본형(1954~2013)이었다. 그 둘은 모두 아름다운 문장을 썼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구본형에 대한 존경을 한껏 담아 결국은 나를 뽐내는 글을 썼다. 짧은 글인데도 장황하고 현학적이라는 누군가의 지적을 받았다. 한 줄 정리 해 달라는 요구에 “부러져도 좋으니, 열심히 부대끼며 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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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생 구본형은 1998년, 그의 나이 마흔 넷(정확히는 만 43세 몇 개월)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펴냈다. ‘리얼리즘에 토대를 둔 로맨티시즘’이라는 나의 블로그 제목도, 사실은 ‘현실적 이상주의자’라는 그의 자기 소개를 훔친 것에 불과하다.



이제 나의 마흔 넷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익숙함과 결별하고, 어떤 새로운 것과 역사적 만남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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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여년 만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 개정판을 내며 구본형은 개정판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첫 번째 책이었고, 내가 최초의 독자였다. 나는 이 책으로 살고 싶은 인생을 살았다. 이 책의 최초의 수혜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연연하거나 매이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지나왔다. 이 책을 고쳐 다시 내는 이유는 혹시 이 책으로 인해 나처럼, 축복처럼, 자기를 다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혁명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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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먼 곳에의 그리움 (Fernw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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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 드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잘 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詩句)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을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곳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해 보고 웃기도 한다.


 내 영혼에 언제나 고여 있는 이 그리움의 샘을 올해는 몇 개월 아니, 몇 주일 동안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너무나 막연한 설계―아니 오히려 ‘반설계(反設計)’ 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 있으리오? 동경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명의 연소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 본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 지금 SK텔레콤은 + 나누고 싶은 이야기 】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고

―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봄이 왔다. 새로운 계절은 이미 온몸의 감각을 더듬는다. 동시에 내가 지녔던 많은 것들이 떠나간다. 행복날개를 달고 SK텔레콤에 입사한 지 벌써 세 달. 나의 스무 살, 나의 올곧은 청춘들, 대학생이라는 명패 아래 용서되었던 많은 시공간들, 그리고 나의 어린 사랑들,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향기들. 그 모든 것들은 수습사원이라는 명패와 함께, 잘 있으오! 잘 가시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서울에서 전근을 온 국어교사는 학생들에게 언어영역 문제 하나를 더 풀어주는 것보다 머릿속의 고정관념 하나를 지워주는 데 더 능숙했다. 그는 주로 '변화'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리고 칠판 가득하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고 썼다.


불타는 갑판 위에서의 선택으로 책은 시작한다. 앤디 모칸. 1998년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유전에서 석유 시추선이 폭발하여 168명의 목숨이 희생된 사고가 발생하였다. 탐사선의 감독 앤디 모칸에게는 불타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두려웠다. 머뭇거림도 잠시, 그는 불꽃이 일렁이는 차가운 북해의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엇이 앤디 모칸을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배에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168명은 왜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대학을 갓 졸업한 내겐 주변의 많은 것들이 두렵다. 또 불확실하다. 앞으로 삶의 많은 나날들이 대부분 불확실성의 연속일 것이다. 사회 초년병이자 인생 초년병. 내게 익숙한 것들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Ctrl+C, Ctrl+V'의 리포트,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수업, 시간이 되면 밥이 나오는 학생식당.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 나의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책은 변화와 욕망에 대한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여느 경영 관련 도서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장과 새로운 시각은 '변화관리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작가 구본형에 대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확실한 죽음(certain death)을 택할 것인가, 죽을지도 모르는(possible death) 죽음으로의 자발적인 선택을 택할 것인가? 이 책은 명쾌한 논리로 변화와 주체적 욕망을 강조한다.


어느 회교 신비주의 시인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아 보인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설령 그들이 슬픈 군중이어서 나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내 마음을 휑하니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나는 마음의 창을 닫아두지 말지어다. 창이 닫히면 햇살도 들어오지 못할 뿐더러 동시에 삐걱거리는 가구와 매캐한 먼지도 나가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역시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두자. 生의 순간에 숨쉬어라. 경이로운 그것을 담으라. 설령 실패와 좌절이 내 발목을 휘감더라도… 도전, 그것은 나의 유일한 이름이자 보호막이라.


나는 당신의 손에 쥐어진 활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옵소서. 나는 부러질까 두렵습니다. 나를 힘껏 당기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책의 후기를 대신하여 작가가 소개한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이며, 1953년에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70세의 나이로 발표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도


글 | 최창규 사우(경영전략실 경영전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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