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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종필 감독 영화 파반느, 그리고 소설가 박민규

by 최창규 CK



박민규 작가에 관하여 내가 어떤 말을 더 적을 수 있을까.


한국 문단에 내려진 벼락같은 축복이었으나, 그 압도적인 재능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표절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절필 중이다.


김훈이 한국어 문장의 미학적 갱신을 이룩했다면, 박민규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문법 그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한 혁명가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불온하고도 찬란한 천재성의 귀환을, 16년이라는 긴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갈구하고 있다.


2018년, 플랫폼의 경계를 넘어 저스툰(現 코미코)을 통해 공개되었던 그의 신작 『코끼리』는 2021년 완결이라는 마침표를 찍고도 아직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때 당시 9년 만의 복귀작이라 불리던 그 작품은, 어느덧 15년 넘는 기다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현존하는 박민규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이종필 감독 작품으로 2026년 영화화되어 개봉한다.


제목은 《파반느》.




***



①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현재 활동 중인 작가의 소설을 대상으로 50편을 공동 선정했고, 박민규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400185




②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100회 특집 기념 Top 30에서, 현직 작가로서 뽑힌 두 명은 김훈과 박민규다. (22위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9위 김훈 『칼의 노래』)




③ 2010년 《한겨레21》이 젊은 문학 평론가 68명의 투표로 뽑은 2000년대 한국 문학 최고의 작가 역시 27표를 얻은 박민규였다. (2위 김연수 24표, 3위 김훈 20표, 4위 김애란 12표) ‘장르 혼종’이라는 2000년대적 현상의 중심에 박민규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68년생 박민규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40대를 잃어버렸다.


https://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065.html



④ 박민규의 단편은 하나하나 빛나도록 아름답고 즐겁다. 문학평론가의 문학평론가 황종연 교수가 고른 20명에도 당연히 박민규는 랭크되어 있다.


【 한국 단편소설 읽기 입문 】
― 문학평론가 황종연이 고른 작가 20명의 대표 소설집

[01] 최윤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문학적 동물들의 아나키즘 ― 최윤, 「회색 눈사람」”
[02] 신경숙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 “여성의 슬픈 향유 ― 신경숙, 「배드민턴 치는 여자」” [03] 윤대녕 소설집, 『은어 낚시 통신』 “하이퍼리얼한 타자의 환각 ― 윤대녕, 「카메라 옵스큐라」”
[04] 전경린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사랑이 상상의 베일을 벗을 때 ― 전경린,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05] 김소진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민중의 탈신화화와 재신화화 ― 김소진, 「건널목에서」”
[06] 성석제 소설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절판) “이야기 전승의 놀이와 정치 ― 성석제, 「조동관약전」”
[07] 김영하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고독한 대중문화 마니아의 타나토스 ― 김영하, 「바람이 분다」”
[08] 하성란 소설집, 『옆집 여자』 “스크린을 보는 눈의 역설 ― 하성란, 「당신의 백미러」”
[09] 한강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세속 너머를 향한 식물 되기 ― 한강, 「내 여자의 열매」” [10] 은희경 소설집, 『상속』 “동물화한 인간의 유물론적 윤리 ― 은희경, 「내가 살았던 집」”
[11] 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 “순진한 사람들의 카니발적 공동체 ―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12] 이기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반권력을 위한 인간 우화 ― 이기호,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13] 김연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정치 이성 레짐의 바깥으로 ― 김연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14]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동성사회적 욕망과 팝 모더니즘 ― 박민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15] 김인숙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후의 생을 위하여 ― 김인숙, 「감옥의 뜰」”
[16] 편혜영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인간 사육의 숭고한 테크놀로지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17] 김애란 소설집, 『침이 고인다』 “소비주의의 역병과 싸우는 농담 ― 김애란, 「성탄특선」”
[18]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강남 밖의 청년, 그의 망상과 익살 ― 김경욱, 「런닝 맨」”
[19] 황정은 소설집, 『파씨의 입문』 “미니멀리즘, 아이의 마음, 코뮌주의 ― 황정은, 「디디의 우산」”
[20]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비극적 파토스의 민주화 ― 권여선, 「봄밤」”




⑤ 더불어 장편은 소설적 재미의 극한을 보여주는데, 2009년 작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 정점에 있다.




⑥ 쉽고 재밌으며 심오하고 주제가 있는 글의 교본, 박민규(2004), 《조까라, 마이싱이다!


https://tyangkyu.tistory.com/34



⑦ 박민규, 그리고 함민복



이 순간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파리 라세느에서 샤또 마고를 곁들인 오리요리를 먹는 것, 그리스 산토리니의 해안에서 지중해의 풍광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인도 바라나시의 들판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 오스트리아 국립극장에서 비엔나 필이 연주하는 모짜르트를 듣는 것, 몰디브의 푸른 물속에 자신의 전부를 담그는 것, 삿뽀로의 폭설을 보면서 북해도 대게를 맛보는 것, 그리고 돌아와 함민복의 시를 읽는 것이다.

이 중 한 가지를 또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함민복을 읽는 일’을 선택할 것이다. 가장 근사한 일이란, 모쪼록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지구에서.

 ― 소설가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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