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ck Review

리뷰 : 나로 살 결심

문유석답지 않은 문유석

by 퇴턍규

부푼 마음으로 문유석 작가의 신작을 읽었다.


정세랑, 박민규, 김훈과 함께 분기마다 그들의 신작이 나오지 않았나 하고 검색한다. 1판 1쇄를 놓치면 그렇게나 나의 게으름이 후회될 수가 없다.


신간, 『나로 살 결심』.


실망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문유석을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적당히 시니컬’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많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작품은 애를 쓰고 기를 쓰며 정리한 글의 느낌이지만 다분히 지루하다. 부장님이 신입사원 앞에 앉혀 두고 라떼 이스 호스하는 느낌의 이쪽저쪽. 파트타임과 풀타임 글쓰기의 전형적인 대조를 보여준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뭐든 재미없어진다는 그 말!)



풀타임 작가가 된 지 5년, 깊고 넓은 희로애락을 그는 이미 다 느낀 듯하다. 10년도 20년도 아닌 5년 만에.


3부 《매력적인 오답을 쓰는 삶》은 절반 이상 덜어내도 무방하다. 과하게 추상적이고 중언부언한다. 특히 소제목 《불면의 밤과 역류성 식도염》과 같이 어색하며 식사한 과장법은, 정말 내가 알던 문유석인가 의심케 한다. 표류하던 글은 207쪽쯤에야 정신을 차린다. 배우 남태부의 묵직한 대사(“저도 판삽니다”), 단역 이유미의 몰입감 등 구체성과 생동감이 살아난 덕분이다.


은희경 『빛의 과거』의 주인공 김유경의 친구 이경혜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야기에 확신을 갖고, 특히나 고유명사와 숫자를 동원해서 설명하는 사람을 무턱대로 신뢰했으며 미리부터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78쪽)”는 사람이다. 그것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작가가 바로 문유석이었다. 그의 글은 본래 펄떡거리는 잉어처럼 생명력 있고 구체성이 빛났다. 당장 그의 최고작 『개인주의자 선언』이나 『쾌락독서』 아무 페이지를 펼쳐보자. 그는 글을 가지고 맘껏 뛰놀며 웃고 있다. 삶의 농밀한 구체성과 위트가 무엇인지 힘 빼고 제대로 보여주는 글쓰기 학교의 시범 조교처럼.




사춘기 사내 녀석의 과잉 분비되는 호르몬이란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세계문학사에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조차 완독하게 만들었다. 의아하게 생각되는 분은 『율리시스』 제18장 ‘침실/페넬로페’를 읽어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쾌락독서』, 48쪽


쾌락독서.jpg


복잡한 문제의 답은 의외로 단순할 때가 많다. 거창한 이념이나 이상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실적이 뛰어난 사회들이다. 전교 30등이 성적 향상을 위해 참고할 공부 방법은 우선 지금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아이들의 공부 방법 아닐까. 사용자의 만족도에 해당하는 국민의 행복지수를 우선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되, 국가경쟁력, 일인당 국민소득, 교육 시스템, 양성평등, 정부의 투명성과 효율성, 정치적 자유와 인권 보장 등의 객관적 지표들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지표들을 찾아보면 간단하다. 이런 모든 면에서 뛰어난 엄친아 국가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 『개인주의자 선언』, 250쪽


개인주의자 선언.jpg


그가 그토록 거부해 왔던 ‘유퀴즈’와 같은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건, 그가 느끼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두 번이나 섭외가 왔지만 안 나갔어요. 저는 티브이는 절대로 안 나가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어서 <유퀴즈>뿐 아니라 다른 프로 섭외도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 162쪽)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빛나는 젊음과 그 젊음이 잉태했던 문장, 그리고 그것을 상실한 지금을.


https://www.youtube.com/watch?v=aHFY3CTBB6o


https://www.youtube.com/watch?v=PSGtgXrq3-E


내가 크리에이터를 맡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비질란테> 방영을 앞두고 오랜만에 신문 인터뷰를 했다. 그때 받은 마지막 질문은 ‘작가로서의 삶은 행복한가?’였다. 대답은 이랬다.

“원했던 자유를 누린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판사 시절이 더 행복하긴 했다. 행복도의 차이라는 것은 결국 젊음의 유무에 달린 일 같다. 판사 시절엔 내가 더 젊었고 뜻맞는 선후배들과 함께 있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큰 실망감을 떠안았다. 솔직히 첫사랑을 잃은 느낌이다. 이제 늙었고 혼자 글쓴다 한들 예전만큼 신명나진 않는다. 다만 이 모든 게 순리 아니겠나 생각한다.”

― 『나로 살 결심』, 237~238쪽



문유석의 이전 책을 문유석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만큼 난 그의 문장과 사상, 지적 허영과 고민과 불면의 밤을 사랑하며, 동시에 화려한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 네까짓 게 뭘 아느냐는 것처럼 내 정신에 감탄사를 먹일 카운터 펀치를.



내 경우 책 고르기에도 ‘짜사이 이론’이 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권의 책이 갖고 있는 많은 요소 중에서 나는 유독 문체에 좌우되는 편이다. 문장이 내 취향인 글은 아무리 시시해도 술술 읽게 된다. 반대의 경우 아무리 내용이 훌륭해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덮는다. 방금도 책 두 권을 폈다가 5분 만에 둘 다 덮었다. 하나는 너무 거창한 관념어가 빽빽하게 들어찬 포르테 범벅의 글, 또 하나는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언어의 반복이라 특별함이라곤 한구석도 없는 글. 책을 덮고 내 취향의 글이나 뭘까 생각해봤다.

• 어깨에 힘 빼고 느긋하게 쓴 글.
• 하지만 한 문단엔 적어도 한 가지 악센트는 있는 글.
• 너무 열심히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잘 쓴 글.
• 갯과보다는 고양잇과의 글.
• 시큰둥한 글.
• 천연덕스러운 깨알 개그로 킥킥대게 만드는 글.
• 이쁘게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촌스럽지도 않은 글.
• 간결하고 솔직하고 위트 있고 지적이되 과시적이지 않으며 적당히 시니컬한 글.

이런 스타일의 글이라면 화학자들의 사생활에 관한 책이든 코털 가위 제조업계의 흥망성쇠에 관한 글이든 즐겁게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좋고 이쁜 것만 보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읽기 싫은 글을 이름값 때문에 힘겹게 읽으며 사서 고생할 필요 있나 싶다.

― 『쾌락독서』, 53~54쪽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유석의 다음 작품과 다음 대본을 또다시 분기에 한 번 이상 검색할 것이다.


***


찐팬으로서 두 가지를 덧붙인다. 하나는 감사요, 하나는 아쉬움.


한때의 금태섭(《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 한겨레신문 2006년, 당시 금태섭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39세)이나 김웅(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검사내전』, 당시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48세)처럼 결국 문유석 작가도 정치인의 길을 걷고, 또 One of Them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변호사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법조인이 아니라 전업 작가로 남아주어 팬으로서는 감사할 따름.


한편, 글 전반에 개인의 고뇌가 도드라진 탓에 ‘아내와 딸들’은 너무 소극적으로 다뤄진다. 구체적 묘사는 어렵더라도, 어려운 선택을 함께한 가족에게 더 좋은 문장으로 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야 하지 않았을까? (가족 내부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제3의 독자 입장에서 너무 나갔나?) 다만, ‘문학평론가가 존경하는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그의 대표 평론집 『명작 이후의 명작』(2022) 후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맺었다.



끝으로 아내 백경희에게 감사한다. 연재를 시작하고 몇 달 후 병이 나서 처음 약속대로 매월 연재를 계속하기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연재를 쉬고 있던 동안 나는 에토 준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평전을 읽었다. 그는 일본 문학과 비평에 흥미를 갖도록 나를 처음 자극한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이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남아 병고를 겪었던 그는 자신을 ‘형해(形骸)’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스스로 “처결”해서 그 형태를 끊기로 했으니 양해해 주었으면 한다는 글을 남기고 예순여섯에 죽었다. “처결”이라는 고풍스러운 단어는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나온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에토 준의 마음을 생각했다. 내가 형태를 면한 것은 아내 덕분이다.

― 『명작 이후의 명작』, 475쪽



p.s.

문유석은 글만큼 말이 좋은 작가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p-cJ_Bupq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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