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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K-POP의 빛과 그림자

73세, 아직도 현역인 SM에 관한 메모

by 퇴턍규

1952년, 3형제 중 막내로 출생했다.


1972년, 밴드 ‘4월과 5월’의 멤버로 데뷔했으나 건강 이상으로 중도 탈퇴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기계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대학가요제 MC로 활약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노스리지(CSUN)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 제목은 “Robotic system with computer vision.”


https://brunch.co.kr/@tyangkyu/83


1884년 12월, 귀국 인터뷰에서 “고국에 오니까 마음이 안정됩니다. 미국에서는 공부와 생활, 보이지 않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 의식 때문에 항상 긴장 연속의 생활”이었다며, 졸업하자마자 짐도 싸지 않고 바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유학 중 UCLA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비디오를 전공하는 김지혜와 1984년 1월 결혼했다. 그의 포부는 컴퓨터 회사 사장이었다. (“제작 여건만 마련되면 음악 비디오도 계속 제작하고 싶고 전공인 컴퓨터 분야도 살리고 싶습니다. 컴퓨터 보급이나 소규모의 컴퓨터 회사를 갖는 것이 꿈입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690039


1989년 SM기획을 설립했다. 그의 유학 시절 개국했던 MTV(1981)가 그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았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음악은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즐기는 것, Perfomance 이며 Entertainment였다.


이수만, SM, the pioneer. K-POP의 빛과 그림자.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이수만을 가리켜, “현재 K-POP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척박했던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산업화시키고, 세계의 으뜸으로 우뚝 서게 한 우리 음악인들의 레거시”라고 극찬한 바 있다.


https://m.ajunews.com/view/20230210082930413


2009년 7월, 훗날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이른바 ‘노예 계약’ 판례의 대상이 된다. 지나치게 장기(13년)이며 수익 분배가 과도하게 기획사에 유리하게 되어 있고 또 계약 기간 동안 활동의 자유가 없는 등의 불공정한 전속 계약에 관하여 장기간의 계약 기간과 과다한 손해배상액 예정 조항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연예인 전속계약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한 사례(서울중앙지법 2009.10.27, 2009카합2869)로 JYJ와 이별했다.


https://brunch.co.kr/@tyangkyu/82


2023년 2월,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끝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이브에 SM엔터 지분 14.8%를 4,228억 원에 매각하고 자신이 세운 회사, 자신의 이름을 단 K-POP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의 나이 71세. 이후 3년간 국내 프로듀싱을 하지 않겠다는 경업금지 조약에 서명했고, 이 기한은 2026년 2월에 만료된다.


https://lite.evernote.com/note/7117a04a-68bc-cf8a-5d6f-f2dce6177e28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33/0000090851



2023년 3월, 자본금 1억 원으로 지주회사 블루밍그레이스를 설립했다. 이어 2024년 자회사 A2O 엔터(Alpha to Omega)를 세우고 유영진 프로듀서와 조카인 소녀시대 써니를 영입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4년 12월, 신인 그룹 에이투오메이(A2OMAY)를 선보였다. 멤버는 미국인 3명과 중국인 2명. 현재 알려진 20여 명의 연습생 중 17명은 중국인, 3명은 일본인이며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과거 SM엔터 시절의 한계였던 ‘글로벌 확장성’과 ‘지배구조 안정’을 노린 측면이라고 한다.



2025년, 73세의 그는 아직도 현역으로 Key Producer 겸 Visionary Leader로 활동 중이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를 통해 1호 가수 현진영을 데뷔시킨 지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311/000195395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575839?sid=103



https://www.instiz.net/pt/729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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