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는 화가
큰 아이를 성균관대학교 근처의 과학 캠프에 보내고 유료 주차장에 차를 맡긴다. 햇볕은 포근하나 바람이 매섭다. 남은 식구 셋이 서로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길은 따뜻하고 가볍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이 열리고 있다. 사전 예매 혹은 현장 선착순 입장이 가능하지만, 준비가 없었던 우리는 먼발치에서 입맛을 다시기만 한다.
대신에 여러 현대미술관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길을 나선다. 기념품 샵에는 김환기도 장욱진도 이중섭도 자본주의화 된 채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아내는 지인에게 선물할 스티커를, 나는 이중섭 도록과 장욱진 손수건을 고른다.
이중섭은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1954년 9월의 편지에서 자신을 ‘정직한 화공’이라고 칭했다. 자칭에 하나 덧붙이자면 ‘가난한 가장’이 어울릴 것이다. 가난함과 가장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동질적이고 또 이질적인가. 물질적 가난함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그는 정신적 부유함을 꿈꾸며 가족에게 엽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4, 종이에 잉크, 크레용, 26.4 x 20cm를 보면 그의 모든 것이 있다. 그린 작품과 그릴 작품도, 팔레트와 펜과 붓도, 가난도 가족과 가족에게 보내는 엽서도, 그림을 팔아 벌어야 할 돈의 무게도, 팬티 차림의 일상과 곰방대도 다 그곳에 있다. 돌을 채 넘기지 못하고 감염병으로 죽은 첫째 아들에게 그토록 먹이고 싶었던 복숭아와 둘째 아들 태헌, 셋째 아들 태성이에 대한 가여움도 담겨 있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모아둔 이중섭의 책을 꺼낸다. 이중섭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는 평전도 있고 엽서를 모은 작은 도서도 있다.
“야스카타에게
감기는 나았니?
감기에 걸려 무척이나 아팠겠구나!
감기 정도는 쫓아버려야지.
더욱더 건강해지고 열심히 공부해라.
아빠가 야스카타와 야스나리가
복숭아를 가지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어라.
그럼 안녕.
아빠가”
이 작은 글에 나는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