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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Sep 01. 2024

리뷰 : 이중 하나는 거짓말, 영원한 천국

김애란과 정유정의 신작 장편소설, 개인적 비교

표절로 물들어 버린 한때의 천재 소설가 박민규. 그의 신간을 10년 넘게 기다렸지만, 대신 찾게 된 대체재인 ‘박민규 순한 맛’ 김애란이었다. 재기발랄했고 참신했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2005년에 나온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김애란 매력의 결정체이다. 김애란이 13년 만의 장편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오만이거나 편집자의 오버와 함께. 



“젊은 거장 김애란, 1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띠지의 그 어떤 문구도 그녀와 그녀의 이번 작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번 작품은 거칠게 분류하면 ‘성장소설’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제목과, 소설을 별로 관통하지 못하는 가벼운 소재(거짓말)를 가지고 그녀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걸까? 애틋한 파스텔톤 혹은 웹소설을 연상시키는 문체로, 그녀와 편집자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손원평의 『아몬드』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팔린다. 그래야 돈이 된다.


235페이지의 얇은 책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넓은 자간과 장평, 예쁜 표지에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인물 간 억지로 끼워 맞춘 개연성과 촌스러운 대화체는 이제 막 창작을 시작한 초보 작가에게나 어울릴 법하다. 이건 적어도 ‘젊은 거장’의 작품도, 13년 만에 내놓을 책도 아니다. 편집의 승리이자, 마케팅의 산물이며, 온라인 출판사 굿즈의 역작이다. 김애란은 여전히 13년 전에 머물러 있다. 얇은 이 책은 16,000원, 꽤나 팔릴 것이다. 내실만큼이나 마케팅과 홍보가 중요한 시대니까. 문학동네의 작품이다. 소설의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스운 것이 없겠지만, 나 같은 책 수집가에게 조차 그런 치사한 것을 떠오르게 하는 반전 매력(?)이 있다.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던 한때의 성장소설 작가 정유정은, 혹독한 자기 검증을 거쳐 신작 『영원한 천국』을 내놓았다. 묵직한 제목은 그녀와 편집자의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번 제목은 지극히 평범하다. 소설의 깊이와 작가적 상상력, 촘촘한 플롯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띠지의 문구, “현실 너머로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다” 역시 단조롭다. 그러나 장강명의 추천사처럼 “이 정도 두께의 책을 한자리에서 이 정도 속도로 읽은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는 벼락같은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좋은 소설이다. 좋은 문장과 부드러운 표현은 무거운 사건을 유려하게 그려낸다. 520페이지의 두께에 장평, 자간, 여백을 고려하면, 235페이지 책 대비 물리적으로 3배, 화학적으로 10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은행나무에서 내놓은 이 책은 19,800원이다.




소설은 탄탄한 주인공 집단을 바탕으로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경험을 녹여내, 가난과 성공, 사랑과 상실, 가족과 일터라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소재를 이야기한다. 조니 뎁이 출연한 2014년 영화 《트랜센던스》나 여느 SF 작품에서 여러 번 사용된 ‘뇌의 정보를 가상 세계나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이야기를 과하지 않게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 가상 세계를 ‘롤라’라고 부르는데, 정유정은 이 단어나 프레임워크를 ‘젠체’하지 않으며, 마치 본인만이 이 주제를 독점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지 않는다. 녹여낸다는 의미가 딱 어울린다.


“인정한다. 과학에 대한 내 지식은 미천하기 그지없다. 지식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상상만큼은 내 전문 분야니까. 상상 좀 한다고 경찰이 와서 잡아갈 것도 아니고. 그래서 실컷 상상을 해봤다.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으며 아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삶에 대해.” 


라고 작가의 말은 쓰여 있다. 노력을 했지만, 그것을 과장하지 않겠다는 겸손함으로 읽힌다.


1966년생인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누구를 흉내 내거나 다른 작품이 되려 하지 않고, 혹은 자본주의와 책 판매 부수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역량과 상상력을 깊이 고민하며 그녀만의 장르를 지켜냈다. 젊은 거장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작가와 작품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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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두 명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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