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장시키는 것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

by 수움 Sooum

나는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회사든 교회든 운동이든, 외출할 때면 나는 보청기와 인공와우로 전신 무장을 한다. 기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긴 머리로 귀를 가린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머리 스타일도 제한적이다. 사실 나는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올백 머리나 머리를 높게 올리는 업스타일을 좀처럼 시도하지 못한다. 액세서리 활용도 자유롭지 않다. 귀걸이를 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귀로 향해 보청기가 보이기 때문에 잘 착용하지 않게 된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가짐 또한 단단히 무장한다. ‘나는 오늘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내 장애는 내 잘못이 아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며 집을 나선다. 밖에서는 남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기 때문이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보청기도, 인공와우도 착용하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면 어떨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소통이 안 되겠지만, 그게 내 모습인데. 주변 사람들이 답답하다면 메신저나 메일로 연락하면 되지 않을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볼 뿐이다.

그래서 내 방에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완전히 독립했을 때의 기분은 아직 모르겠다. 건청인이신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에 집에서 아무것도 착용하진 않을 순 없어, 최소한의 장치인 보청기만 끼고 생활한다. 가족들과 35년 넘게 생활하였기에 일상대화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 나만의 공간, 내 방에 있을 때에 몸과 마음이 비로소 가장 편안해진다.

일할 때나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도 집에서의 내 모습처럼 편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는 밖을 나설 때마다,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토록 전신 무장을 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주변 말보다 본인의 생각과 고집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고들 한다. 점점 생각이 굳어지는 것이다. 특히 노인성 난청을 겪는 분들 중에는 주변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전화하거나, 들리는 대로 혹은 안 들리는 대로 멋대로 해석하며 대화하기도 한다. 그 또한 나이 든 사람의 모습 중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나이가 들고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좋은 추억도 많지만 힘들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촘촘히 쌓여갈수록, 그저 편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진다.

미래에 어떤 어른이 되는 게 좋을지 늘 고민한다. 작은 습관 하나가 태도와 운명을 바꾼다는 말에 늘 조심하며 산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까.

방에만 틀어박힌 폐쇄적인 모습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나를 끝없이 마모시키고 싶지도 않다. 나와 가족, 소중한 사람들을 놓아버릴 수는 없기에, 나를 살리면서 남도 살리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본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딘가에 닿지 않을까. 나쁘게 살지만 않으면 된다. 그거면 된다.

언젠가 무거운 무장을 벗고도 활짝 열린 창문처럼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밖에서는 단단한 외벽으로 살아가지만, 내 마음의 안뜰만큼은 언제든 맨 몸으로 쉴 수 있는 볕 잘 드는 공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