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가 없는 세상, 오역된 어른의 세계

by 수움 Sooum

어릴 적 내가 상상한 어른의 세계는 견고하고 완벽했다.

내가 청각장애가 있어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사회 시스템이 이미 정교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의료와 교육, 취업 등의 가이드라인이 구성되어 있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세상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나는 철학과 종교라는 깊은 사유의 우물 속에 빠져 있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의 존재 기원과 철학과 종교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 등의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본인도 이런 고민과 생각을 한다고, 이런 질문들을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하여 미국 유학 갔다는 소식까지만 듣고 끊겼는데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랬던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일을 했던 과정에서 어른의 세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다 못해 불안하고 불완전하며 이 세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희생, 헌신, 사랑, 인내, 겸손, 온유라는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보다 쉬운 것들만 선택하고 욕망, 이기심에 따라 사는 것에 익숙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현실이 나만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를 못 하고 몰이해 속에 살아가며 서로에게 해주는 공감 또한 추측일 뿐일 가능성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면 내가 이토록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덜 했을까.

인간은 질투와 열등의식의 결정체뿐이라는 것 또한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나는 이 세상을 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세상이 너무 이해가 안 되고 뭐라고 설명도 하기 어려울 만큼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서 성경 공부에 매진했던 큰 이유였기도 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창세기 첫 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일 년 동안 정독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성경 통독과 큐티 공부를 한다.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성경의 배경이 되는 역사, 문화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서양사와 한국사, 철학을 공부하며 계속 관심을 가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다. 치가 떨리며 그냥 싫을 때가 많다. 이것이 내가 계속 읽고, 쓰고, 사색하는 이유다. 점점 더 가벼워지고 쉬운 것을 더 선택하기 쉬워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침묵을 품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며 살 수 있을까. 근본적인 고독감 아래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공부하고 사색한다. 이 지독한 불쾌감을 견디기 위해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끝내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