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애에 대한 특수성과 보편성

by 수움 Sooum

살다 보면 나의 장애를 어떤 렌즈로 바라봐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겪는 소통의 단절과 관계의 피로감을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겪는 특수한 고통’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대인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할까.

회사에서 나의 장애를 아는 상사들은 가끔 위로조로 말하곤 한다. ‘나도 여기저기 아파.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아프고 힘든 거지 뭐.’ 그 따뜻한 배려를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의문이 남았다. 노화나 일시적인 질환이, 삶의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나의 장애와 정말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는 보편적인 아픔인 걸까.

나의 장애를 남들과 똑같은 보편적인 아픔으로 본다면 나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사실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소통이 힘들면 심리학 책을 찾아보거나 처세술을 배우면 된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반대로 나의 장애를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특수한 상태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회가 나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지원해야 하며, 나 또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융화될 것인지, 혹은 안전한 거리를 둘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의 답은 내가 사는 사회의 설계 지향점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대한민국은 장애를 ‘특수한 상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법과 제도를 통해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특수학교와 일반학교를 분리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복지적 접근이다.

반면 북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장애를 개인의 특수함이 아닌, 사회의 보편적인 설계 문제로 접근한다. 건축 단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장애인이 따로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장애가 특별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모든 시민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것을 오류로 보는 것이다. 장애인 서비스는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시민권’이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두 관점의 균형을 잡기로 했다. 우선 나의 장애를 의학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남는 불편함은 나의 잘못이 아닌 ‘아직 미성숙한 사회 구조’의 문제로, 즉 보편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 한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아직 나를 담을 만큼 넓게 설계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동시에 나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설계자가 되기로 했다. 정부의 제도 혁신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내고, 장애 관련 연구 인터뷰나 설문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회가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조각들을 직접 제안하는 것이다.

미성숙한 사회와 함께 나 자신 또한 고민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내 삶의 의미가 된다. 사회를 이해하고 국가의 구조와 문화, 역사를 심층적으로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가뒀던 장애라는 특수한 감옥은 사라지고 타인과 세상을 향한 다각도의 풍성한 시선만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