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돌발성 난청은 나의 한쪽 보청기라는 가녀린 의지처를 무너뜨렸고, 나는 떠밀리듯 ‘인공와우 수술’이라는 낯선 선택지를 쥐어야 했다.
먼저 수술을 받았던 동생의 긍정적인 후기가 있었음에도 두려움은 실체가 컸다. 머리를 열어야 하는 대수술, 지독한 어지럼증과 기나긴 재활, 그리고 무엇보다 내 머리 한쪽에 평생 박혀있을 차가운 기계 덩어리에 대한 거부감.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청력을 기다리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소리의 세계로 돌아가는 통로를 짓기로 결심했다.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와 코 끝까지 다가온 마취과 선생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긴 잠에 빠졌다. 깨어났을 때 세상은 온통 일렁이는 어지럼증뿐이었다. 붕대를 칭칭 감고 부어오른 얼굴로 입원실에 누워있던 일주일. 진통제로 통증을 누르며 밥 한 술 겨우 넘기던 그 고통의 시간 곁에는, 바쁘셨던 부모님 대신 나를 돌봐주던 동생이 있었다.
수술보다 더한 고비는 ‘언어 재활’이었다. 처음 들려온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치지직거리는 기계음과 낯선 전자음의 불협화음. 하지만 나는 시간을 믿기로 했다. 재활 선생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열하게 재활 노트를 채워갔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들을 수 없다’라는 절박함이 나의 펜 끝을 밀어붙였다. 결국, 기계음은 서서히 온기를 입어 사람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인공와우를 한지 어느덧 10년. 나의 세상은 인공와우가 잡아주는 선명한 고음과 보청기가 감당하는 묵직한 저음이 만나 위태로운 균형을 이룬다. 여전히 소음 속에서 단어를 가려내는 일은 버겁고, 남은 한쪽 귀마저 수술을 권유받을 때면 그 지독한 통증과 재활이 떠올라 뒷걸음질 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유전자 연구와 줄기세포 치료 소식을 들으며 다음 10년을 설계한다. 언젠가 기계의 보조 없이도 내 몸이 스스로 소리의 파동을 읽어낼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기적이 올 때까지, 나는 나의 장애가 어떤 유전자의 영향인지 공부하고 청각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감각을 예리하게 벼려둘 것이다.
미래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자의 것이기에. 모든 질병이 치료될 그날까지 나는 이 고요하고도 특별한 기다림의 시간을 기꺼이 즐기며 보낼 작정이다. 기계가 지어준 다리를 건너, 진짜 나의 감각으로 완성될 집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