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머무는 공간은 왜 피로한가

by 수움 Sooum

배리어프리(Barrier-Free),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이 용어들은 대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경사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분들을 위한 점자블록’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지체장애와 시각장애를 위한 물리적 장벽을 허무는 일은 중요하며, 관련 법규 또한 비교적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법규와 디자인의 사각지대에 놓인 또 다른 감각이 있다. 바로 ‘청각’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규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장치는 화재 시 시각 경보설비 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들이 공간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피로는 아직 건축적 언어로 충분히 해석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금 생소하지만 꼭 필요한 개념인 ‘데프스페이스(DeafSpace)’를 소개하려 한다.

데프스페이스란 무엇인가?

데프스페이스는 미국 갤로뎃 대학교에서 정립한 원칙으로, 청각장애인의 소통방식과 감각에 최적화된 공간 설계를 뜻한다. 단순히 보청기를 잘 들리게 하는 보조 장치를 넘어, 공간의 구조 자체가 청각장애인의 눈과 몸이 되어주는 설계 방식이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 핵심 원칙이 담겨 있다.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입모양과 수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시야 확보, 눈의 피로를 줄이고 표정을 선명하게 만드는 빛의 조절, 나란히 걸으며 수어로 대화할 수 있는 넓은 보행로, 그리고 소리의 난반사를 막는 음향 환경 등이다.

기능을 넘어선 아름다운 건축의 언어로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현재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대부분 ‘기능적’인 접근에 머물러 있다. 법규를 지키기 위해 억지로 덧댄 장치들은 때때로 건축물의 미관을 해치거나, 장애인을 공간에서 도드라지게 또는 분리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데프스페이스는 기능과 미학이 통합된 ‘아름다운 건축의 언어’이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의 동선을 고려한 곡선 벽면이 그 자체로 우아한 인테리어가 되고, 소리를 흡수하는 마감재가 세련된 질감을 선사할 때, 그 공간은 비로소 모두를 품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으로 거듭난다.

우리 모두는 결국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

혹자는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공간 설계가 지나치게 특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상당수가 노인성 난청을 겪는 시대다. 청각 친화적인 공간은 더 이상 소수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과 미래의 나를 위한 필수적인 기반 시설이다.

또한, 과도한 소음과 정보 과잉의 시대에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찾는 현대인들에게도 소리 환경이 잘 정돈된 공간은 절실하다. 데프스페이스는 청각장애인을 넘어, 휴식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청각적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머무는 집, 업무를 보는 사무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카페까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환경을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일. 그것이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건축의 지향점이자,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새로운 설계 방향이다.

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공간의 언어와 울림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나의 건축은 계속된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새로운 시설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