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건축의 인연은 대학교 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때는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대학교를 알아보다가 이과생이었기 때문에 건축학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건축학과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밤샘 설계와 건축인들의 현실이 어떤지 잘 몰랐다. 그저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기에 건축학과에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건축학도로 보낸 시간은 예상보다 매력적이었다. 취업에 대한 걱정과 학점, 경쟁의식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분야를 배워나가고 무엇보다 건축이 ‘종합예술학문’이라는 점에 매료되었다. 그것이 미술이면서 공학이고 동시에 인간의 삶을 다루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공이 아니라 여러 사유가 만나는 학문처럼 느껴졌다.
물론 듣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에 작은 불편함과 수업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지금 다시 대학교 수업을 듣는다면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거나 실시간 자막 변환 어플을 통해 좀 더 원활하게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실시간 자막 앱이 없기도 했고(있어도 정확도가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속기 지원을 받는다거나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 텍스트 변환 강의 자료를 요청할 생각조차 못할 만큼 서툴기도 했다.
도움이 있었다면 학점의 숫자는 조금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어려움은 건축 학문에 대한 나의 흥미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잘 정돈되어 있고 보기만 해도 멋진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설레기도 했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디자인 수업이나 이론 수업도 그 자체로 충분한 재미이자 탐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던 것은 설계사무소라는 현장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였다. 대학교 때까지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도 충분히 나의 몫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달랐다. 소통의 각축장이었으며 다양한 연령대와 환경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대인관계가 어려웠다. 업무적인 면 또한 배우고 성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건축설계업 자체가 회의, 협의가 많고 여러 업체들 간의 이해관계와 협업이 있었다.
나의 장애가 설계도 상의 오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으로서는 다수가 얘기하는 회의에서 모든 사람의 말을 캐치하기가 힘들다. 전화 협의 또한 사람의 입모양을 볼 수 없기에 소통이 어렵다. 저 연차 때는 상급자의 배려로 도면과 보고서 작업에 집중하며 서브 역할로 버틸 수 있었지만, 점점 연차가 쌓여가며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관리해야 하는 입장으로써 회의와 협의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필수였다. 팀원들의 양해라는 지지대만으로 프로젝트를 지탱하기에는 연차라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쉼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 나는 다시 미래를 설계해 본다. 이제는 AI와 스마트 안경이 내 신체의 빈칸을 메워주는 시대다. 이 현대적인 발전은 나에게 다시 고민할 여지를 주어 한편으론 참 감사하다. 비록 지금 당장 조직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기술의 발전 덕분에 나는 꼭 설계사무소가 아니더라도 건축을 계속 사유하고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꿈꾼다.
나는 어떤 모양으로든 건축을 계속할 것이다. 글이든, 디자인이든, 삶의 태도든 내가 짓는 모든 것이 곧 나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의 건축에 돌을 던질 자가 없다.
“여러분에게도 세상이 정해놓은 규격에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던, 하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있는 ‘나만의 건축’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