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사이렌

재난의 순간, 청각은 공간을 어떻게 읽는가

by 수움 Sooum

위기나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일, 그것이 생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재난은 늘 한 박자 늦게, 혹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찾아온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안일함 대신, 우리가 머무는 공간의 사각지대를 미리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고요함이 위험이 되는 순간, 수면

청각장애인이 가장 무방비해지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평온해야 할 수면 중이다. 보청기와 인공와우는 습기에 취약해 밤에는 반드시 몸에서 분리해야 한다. 기기를 빼는 순간 세상은 완벽한 정적에 잠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깊게 잠들 수 있다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화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비상 방송도,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고요한 방. 수면 중에는 후각과 촉각마저 둔해진다. 거실에 시각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들(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에는 설치가 안되어 있다.), 닫힌 방문 너머의 백색 섬광을 잠든 눈이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유독 가스가 방 안을 채우는 3~5분 사이, 골든 타임은 소리 없이 흘러가 버린다.

현재 법규상 침실에는 시각 경보기 설치 의무가 없다. 결국 개인의 대비가 최선이다. 관할 소방서나 주민 센터를 통해 진동 알람기를 지원받거나, 스마트 폰이나 스마트 워치의 소리 감지 기능을 활용해 손목의 진동으로 깨어날 수 있도록 세팅해야 한다. 전기가 끊긴 어둠 속을 밝힐 손전등을 침대 옆에 두는 시각적 생존 도구 확보도 필수다.

군중 속의 고립, 공공 공간의 함정

지하철, 버스, 대형 마트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재난이 닥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대부분의 안내 방송이 음성 위주로 나오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은 주변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과 급박한 움직임을 보고서야 위기를 직감한다. 정보의 격차로 인해 대피 방향을 잡지 못하고 군중 속에서 고립될 위험이 크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비상 인터폰은 음성 전용이다. 최신 기종은 화면을 통한 문자 대화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즉시 119 앱으로 신고하거나 스마트폰 손전등을 문틈으로 비춰 ‘나 여기 있음’을 시각적으로 알려야 한다.

복잡한 공간에서 대피할 때는 무작정 군중을 따라가지 마라. 혼란 속의 다수가 늘 정답은 아니다. 대신 벽면과 천장을 살펴라. 사이렌과 함께 터지는 강한 백색 섬광(시각 경보기)은 위기를 알리는 신호고, 사람이 문으로 나가는 모양의 초록색 불빛(비상구 유도등)은 생명의 통로다. 최근에는 전기가 끊겨도 바닥에 탈출 경로를 그려주는 레이저 장치들이 도입되고 있으니, 소리 대신 빛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피난하여 도달해야 할 층은 지상 1층이 최선이다. 만약 화재가 아래층에서 나서 연기가 밑에서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경우에는 옥상층이나 피난안전층(30~49층의 준초고층 건축과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축일 경우)의 외기에 면한 층으로 대피하여야 한다.

평등한 피난을 위한 섬세한 약속

어느 공간에나 시각 경보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진열대나 조명에 가려진 경보기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에 가면 습관적으로 천장을 본다. 비상구의 위치를 눈에 익히고, 동행이 있다면 미리 부탁을 건넨다. 최근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친구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말로 하지 말고 날 때려서라도 알려줘.’

재난은 예기치 못한 순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그렇기에 피난의 기회 또한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장벽을 허물고 시각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지어야 할 진정한 ‘안전한 공간’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