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기획을 하고
사업화를 하고
경쟁 입찰을 통해 들어 온
업체들을 다루고
프로젝트를 이끌던 내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광부가 되었다
무얼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곳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옛 성언들의 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임하라
나는 새벽 출근도 불사하고
모르는 업무지만 메뉴얼을 만들어 자동화하고
어느 덧 그 일이 손에 익게 되었다.
탄 묻은 옷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본부부서의 핏덩이 신입사원이 정장을 툭툭털며
못 배우니 이런 곳에서 일하는거지 란 말을 뱉었다
그 신입사원의 그 말에
난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내 직통라인으로 그 신입사원을
퇴사조치 시켰다
아무도 그가 왜 퇴사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다
그 누구도 쉽게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엔 어떤 감정도 없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일을 잘해내는 자만이
언젠가 선택을 받는다
20년의 직장생활 속에서
내가 뼈에 각인 시킨 건 바로 그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