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녀는 언제나 방구석에 앉아 있는 게 익숙했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그곳에서,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언가를 치열하게 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미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미친 ‘정신’ 속에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의 깊이와 열정이 숨겨져 있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해 걱정하셨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행동은 그 범주를 넘어섰다. 방구석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점점 더 극단적이었다. "이 세상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스스로를 둘러싼 현실을 벗어나려는 듯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에게는 그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이 중요했다. 한편, 그녀의 오빠는 부모님의 걱정 속에서 차라리 그 모습을 '저게 뭐냐?'며 그녀를 비웃기까지 했다. 오빠는 언제나 세상에 잘 적응한 사람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이였다. 그래서 그가 보는 여동생은 때때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비전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고, 그 실행의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빠는 그런 여동생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그만 좀 해라.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아갔다. 방구석에서 혼자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 속에서 미친 듯한 꿈을 좇아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 여동생'이라 불렀지만, 그 단어 속에서 그녀는 자주 자신을 되돌아보며 외쳤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 그걸 왜 남들이 이해해야 하지?" 그 말은 결국 그녀의 자존심과 꿈을 지키는 말이었고, 그녀에게 있어서 방구석은 그냥 ‘피난처’였을 뿐이었다. 그곳에서만이 그녀는 자유로웠다.
가끔 부모님은 그 자유로움을 보며 고뇌했다. "이 아이는 결국 세상과의 연결을 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그저 그녀가 조금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이 원하는 길을 가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마침내 떠난 날, 부모와 오빠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방구석에 남겨진 흔적들은 그녀의 발자취처럼 느껴졌다. 오빠는 혼자서 “언젠간 돌아올 거라 믿어.”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여동생이 언젠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가 미쳤다고 불리는 그 세상에서, 사실 진정한 ‘미친’ 것은 세상이 아닌, 바로 그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닐까. 방구석에서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간 그녀, 결국 그 미친 여동생의 이야기는 단순히 미친 자식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