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소멸된 건 아니다
요즘의 시대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서로를 지키는 일을 부담으로 느낀다.
결혼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조건을 따져야 하는 결정이 되었고, 아이를 낳는 일은 축복이라기보다 계산의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의미보다 비용과 책임의 언어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질문까지 떠오른다.
이렇게까지 서로를 멀리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면, 인간이라는 종은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변화는 인간의 감정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인간이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사회에서 결혼은 선택이라기보다 구조에 가까웠고, 아이를 낳는 일은 개인의 결단이라기보다 공동체의 지속 방식에 가까웠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웠고,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관계는 의미이기 이전에 생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
혼자 먹고살 수 있다.
혼자 늙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관계는 선택이 되었고, 선택이 된 순간 관계는 책임이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는 일을 부담으로 느끼는 이유는 차가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이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프로젝트가 되었고, 출산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계획의 대상이 되었으며, 돌봄은 의무라기보다 비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인간이 이기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라기보다 사회의 구조가 달라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관계를 미루고, 결혼을 망설이고, 아이를 낳는 일을 포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는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미루는 사회는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속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는 일을 부담으로 느끼는 사회는 서로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감정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신과 자신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신이 사라지면 사람은 선택을 미루게 된다.
자신감이 사라지면 사람은 관계를 줄이게 된다.
미래가 흐려지면 사람은 다음 세대를 상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변화는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결과라기보다 인간이 인간을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게 된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영원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함께 건너가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대는 인간이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다시 필요로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질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은 아직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