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한 시간이라는 착각

삶은 재구성된 허비된 시각의 조각모음

by Bird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방향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가능성을 고민하느라 멈춰 서 있고,

선택을 미루느라 계절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선명한 결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한다. 그 시간은 낭비였다고. 그 시간은 허비였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흔히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시간을 허비라고 부른다.

성과가 없는 시간을 공백이라고 부른다.

방향을 찾지 못한 시간을 방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결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오래 좋아했던 시간은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일을 오래 준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방향을 찾느라 헤매던 몇 년이 결국 다른 길로 이어졌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 시간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살아갈 때는 시간을 소비한다고 느끼지만, 지나온 뒤에는 시간을 구성했다고 느낀다. 그때는 낭비처럼 보였던 시간이 나중에는 이야기로 남는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것 같던 시간이 결국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된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효율적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실패하지 않아야 하고,

헤매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잘못 만나지 않아야 하고,

꿈을 바꾸지 않아야 하고,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는 구조적으로 허비처럼 보이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실수나 오류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우리는 그 시간을 인생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이 아니면 인생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삶은 완성된 경로가 아니라 지나온 흔적에 붙이는 이름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지금 이 시간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허비라고 부르지 않기로.


방향이 보이지 않는 시간도, 결과가 없는 시간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도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 도착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있는 것도 아니라, 이렇게 지나온 시간들을 끝내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에 비로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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