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형준 Jan 23. 2019

Let it be. Let it be me.

리버풀행 취소 특집, 런던 투어

유윌 네버 워크 얼론!


리버풀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 방송에서 캐번 클럽Cavern club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틀즈가 처음 공연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한 커번 클럽은 유럽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를 영국으로 정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첫날 런던 시티 공항에 내려서 바로 비틀즈의 음악을 들었다. 첫 곡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 저녁 7시, 마멀레이드 빛 하늘이 노래 가사와 잘 맞아떨어졌다. 아주 오래된 지하철에 몸을 기대고 퇴근길 회사원들의 압박을 이겨내며, 숙소에 도착. 첫날의 외롭고 멜랑꼴리 했던 하루를 지탱해준 것도 비틀즈의 노래였다.


다음날, 미리 끊어 놓은 6시 발 리버풀행 버진 트레인을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숙소 근처 역인 엘리펀트 앤 캐슬에서 유스턴Euston 역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새벽부터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를 끝내고도 시간이 남아 어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편집했다.


이 날 따라 이상하게 영상 렌더링도 오래 걸리고, 사진 출력도 늦었다. 꿈을 잘 못 꾸진 않았는데, 불길한 기운이 시작부터 감싸고돌았다. 더구나 노숙자 한 명이 숙소로 들어와 내게 돈을 꿔달라고 부탁하는 상황도 겪었다. 약 5파운드 남짓한 돈을 기부한 셈 치고 준 뒤 숙소 밖으로 나와 유스턴 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보다 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유스턴 역까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기차 출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팁 아니고 명심할 점: 영국의 교통수단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기차의 경우 민영화로 인해 가격이 꽤 비싸다. 물론 출발 전에 미리 예매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절대 시간대를 바꿀 수는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친절함을 바라기에 언어 실력이 너무 부족했다.


다시, 런던 그리고 자전거


진정되지 않은 손으로 못쓰게 된 티켓을 부여잡고 역사를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정을 추스르려고 해도 새벽부터 겪은 찜찜한 상황들이 겹쳐 엄청난 스트레스를 만들어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캐번 클럽은커녕 리버풀 땅 조차 밟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 화가 났다. 바로 다음 열차 티켓을 구매하려 했지만, 얼리버드로 산 티켓보다 10배가 넘는 가격에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여행 시작점인데 시무룩할 순 없어서 마음을 다시 고쳐 잡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터덜터덜 유스턴 역을 빠져나오니 자전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밌게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평소 서울에서도 따릉이를 즐겨 탔던 터라 자전거를 타고 런던 시내를 활보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런던의 공공자전거

런던 시내에는 똑같은 모양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산탄데르 은행이 지원하고 있는 런던의 공공자전거는 런던 전역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여하는 방법도 다른 나라의 자전거에 비해 쉬워서 외국 사람들도 여행을 할 때 즐겨 사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자전거는 버스나 택시, 지하철보다는 느리지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 언제든 자유롭게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에 한정해서 장점이 있다. 산탄데르 자전거는 하루 동안 2파운드로 빌릴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따릉이와 같이 반납과 대여를 반복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최대 사용시간은 30분인데 딱 정확하게 맞는 건 아니고 1분 내외로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하다. 만약 자전거를 빌릴 예정이라면, 30분 간격으로 갈 수 있는 장소를 미리 선택해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유럽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자전거 길이 잘 닦이지도,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흔히 코블이라고 불리는 돌길이 많은데, 런던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유명한 곳의 경우 대부분 아스팔트가 잘 깔려있지만, 몇몇 오래된 길의 경우 울퉁불퉁해서 사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꽤 힘든 곳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청계천 주변 도로와 달리 진짜 코블을 밟고 다니는 기분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특별했다.



런던의 낮은, 밤만큼이나 우중충하다. 슬픈 음악에 눈물이 나올 듯 울먹이는 사람처럼 언제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우울한 공기를 휘감고 있다. 대도시 관광지답게 거리마다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사람들의 표정 또한 날씨를 따라가는 탓인지 그리 좋지 않았다.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좋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종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자전거를 타고 캠든타운이라는 곳에 도작했다. 이 곳에는 캠든마켓이라는 시장이 유명하다. 왁자지껄하는 시장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날씨가 한없이 우울한 탓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활기를 띄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모인 많은 사람들은 마켓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는데, 전형적인 시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플리마켓에 가깝다.



시장이 있다는 말에 무작정 찾아간 곳이어서 이렇다 할 정보는 많지 않았다. 나중에 다녀오고 나서야 약간 이태원 느낌 나는 힙한 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몰랐어도 크게 상관없는 정보였다. 아무튼 캠든마켓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젊었다. 만약 이태원이나 익선동 같이 힙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런던에서 이 곳을 꼭 찾아보기를 권한다.



캠든마켓으로 가는 큰 길가에 가게가 줄지어 서있는데, 가게의 간판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다. 파는 물건도 꽤 다양한데 대부분은 의류다. 하지만 나는 캠든마켓에서 엽서 두 장과 열쇠고리를 샀다. 비틀즈나 아델, 샘 스미스 등의 LP판도 눈에 띄었지만, 과소비는 여행의 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제하고 가족과 친구에게 선물할 물건들로 두 손을 채웠다.



캠든마켓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캠든타운행 2층 버스를 타거나 런던 지하철을 타고 캠든타운역에 내리면 쉽게 갈 수 있다. 런던 지하철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최초의 지하철답게 정말 태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에어컨도 안되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에스컬레이터나 스크린도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순히 움직이는 통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큰 불평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생긴 지 꽤 오래된 역이어서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이 선명한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크게 뭘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던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모습은 여유가 보였다. 이 곳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모두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오히려 배려하고 존중한다. 이런 것이 일반적임에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은 배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캠든마켓 구경을 끝내고 주변을 서성이던 도중 재밌는 곳을 발견했다. 이 곳은 강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가에는 배들이 줄지어 있었다. 운하로 쭉 이어진 곳의 정체는 리틀 베니스다. 말 그대로 작은 베니스를 닮은 이곳의 주 특징은 운하 가장자리로 길에 이어진 배들의 행렬이다. 실제로 운행하는 배도 있고,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는 식당 배도 있다. 아기자기해서 배를 타도 큰 감흥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야경이 예쁘다는 프림로즈힐로 가기 위해 잠시 환승 정거장인 피카디리 광장에 발을 디뎠다. 전날 찾은 광장을 비롯해 유럽에는 광장이 꽤 많다. 광장의 주 역할은 도시의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곧 도시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도시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피카디리 광장에서 느낀 런던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번잡하지 않고 여러 소리가 들리지만 시끄럽지 않다.



프림로즈힐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하늘은 이도 저도 아닌 색을 띠는 하늘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이 언덕을 찾은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먹을 것이 들려있었고, 나 또한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영국 음식을 들고 석양을 즐기기로 했다. 해가 어슴푸레 지는 저녁, 런던 시내에서 보지 못한 풍경에 잠깐 넋을 잃었다. 멀리 런던아이와 큰 타워가 보였다. 런던 시내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그것도 대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도 좋았다. 저녁녘 맥주나 커피를 사들고 와 야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어가는 런던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렇게 해가 지고 하루가 갔다.


비록 리버풀은 가지 못했지만 재미있는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London, 런던, Lond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