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컴 투 윤가은 월드, 영화 <우리집>을 보고
한때 창작이란 끊임없이 새로운 샘물을 파야하는 일이니까 단기 프로젝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 우물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그곳에서 말라죽으니까, 금방 다른 터를 찾아 떠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단정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피구왕 서영>을 쓰고 어쩌다 보니 또 다른 소설집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후 나는 일생동안 한 사람이 파고들 수 있는 우물이란 결국 1인 1개로 한정된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생각이 바뀌게 된다. 창작자에게 허락된 하나의 우물, 이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세계관’이다.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을 보고 나는 완전히 ‘윤가은 월드’에 포섭된 느낌을 받았다. 전작 <우리들>에 이어 역시 ‘성장’을 주제로 한 이번 영화 역시 다치고 상처 입고, 또 다치는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탄생부터 불공정한 이 세계에서 성장만큼 공평한 고통이 또 있을까.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감독은 자신이 설계한 세계관을 따라 충실하게 성장 서사를 밀어붙이는 저력을 보여준다. 다치고 상처 입고, 또 다치더라도 끝내 우리는 자란다는 사실을 독하게 과장하거나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딱 그 나이 때의 아이들 눈높이에서 다정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마치 감독 자신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전작 <우리들>에서 초등학교 4학년으로 설정된 주인공의 나이는 어느덧 ‘5학년’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 단순히 나이만 든 게 아니라 주인공이 처한 상황 또한 확연히 다른데, 주인공 하나는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된 유미, 유진 자매를 챙기며 ‘언니’ 역할을 한다. 전작에서는 내내 또래 친구와 생기는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우리집>에서는 가족 내에서는 단란한 가정을 꿈꾸면서 균열이 생긴 가족들 사이를 붙이려는 막내딸, 유미, 유진 자매가 살던 집이 이사를 가지 못하도록 막는 작전을 지휘하는 언니 역할로 안팎으로 ‘다중’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 주를 이룬다.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릴 때 해봤을 법한 하나의 고민은 유미, 유진 자매를 만나며 “우리 모두의 집은 왜 이럴까.”로 질문이 확장된다. 함께라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희망을 걸고 두 명의 동생까지 데리고 집을 떠나가 여행까지 해보지만 셋은 길을 잃은 채 어느 이름 모를 바닷가에서 종이박스로 쌓아 올린 종이집, 즉 그들의 ‘이상향’을 스스로 부수면서 아픈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애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안온함을 주던 이상적인 우리 집은 이미 무너졌고 내가 바로잡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마침내 스스로 체념하고 상처를 인정하는 하나의 마지막 얼굴에서 한 단계 성장을 끝낸 성숙함이 엿보인다.
모든 성장에는 아픔이 따른다. 특히 10대의 성장통이 큰 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은 아닐까. 한 살 차이만 나더라도 놀이터에서 권력관계가 생겼던 그 시절에는 자라는 속도가 빨라 유난히 모든 통증이 선명하게 남았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건 평온한 하나의 세계가 깨져서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이어질 성장통 역시 만만찮을 것 같아서, 자꾸만 하나에게 지난날을 대입하게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윤가은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통증을 애써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부딪혀서 깨닫고 인정하는 건강한 방식으로 하나의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따뜻함을 남긴다.
한 창작자의 세계관을 따라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마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성장 서사’라는 자신의 세계관을 이어가지 않을까 기대된다. 창작은 일평생에 걸쳐 단 하나의 세계관을 꾸준히 밀고 나가서 불특정 다수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장기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설득당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거겠지. 이번 <우리집>을 통해 나는 확신했다. 윤가은의 세계관은 충분히 대중적이고, 더 많은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저력이 있는 ‘설득력 있는’ 세계라고.
그러니까 사시는 동안 하고 싶은 얘기 꾸준히 영화로 해주시고 더 많이 버시고, 늘 건강하세요 감독님(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