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영화 <벌새>를 보고

by 황유미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계속 살아가고 있어.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태어나서 비슷한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아갈까. 그 외로움 때문에 서로 손을 뻗어 잡아보기도 하고, 부둥켜안아 보기도 하지만 결국 알잖아. 맞닿은 손이 참 따뜻하다는 게 처음에만 놀랍다는 것. 손안에 들어온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외로움은 사람이 사람을 찾게 만들지만,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만드는 건 또 무엇 때문일까.


견딜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하필이면 그런 사람까지도 묵인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울타리에 대해서도. 울타리는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누구나 어깨 한 번은 부딪치게 만드는데, 그럼에도 울타리를 끝내 부수지는 못하는 우리에 대해서도. 울타리를 부수고 나가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세상이 두려운 마음도, 그런 불안을 이겨내고 먼저 혼자 울타리를 부수고 튀어나간 지금은 얼굴이 흐릿하게 지워진 친구들도. 머리가 커가는 동안 언제나 그런 친구들한테 눈길이 갔는데. 먼저 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지만. 남몰래 힐끔힐끔 쳐다보며 은근히 위로를 받았던 그런 친구들의 얼굴은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까. 다시는 부딪히고 싶지 않은 이들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선명한데 말이야.


망각에 대해 말해볼까. 잊을 수 있다는 건 다행이지만 가끔은 잔인해. 지난 학기 내내 애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음을 모조리 잊어버리기도 하고. 좋았던 순간보다는 가장 아팠던 순간이 자꾸만 생각나서 밤마다 가슴을 할퀴는 통에 잠 못 들기도 해. 어째서 어떤 기억은 남고, 어떤 기억은 그토록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는 걸까. 그것도 꼭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로운 기억들만. 낯선 수술실의 조명, 붕대를 풀고 흉터를 확인한 날, 그날 침대 위에 혼자였다는 사실, 고막이 터지던 순간의 감각, 그 후에 뒤따른 고통이나 멀어지던 말소리,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사람을 허무하게 보지 못했던 그날 흘렸던 눈물이라던가, 멍하니 서서 무너진 다리를 바라볼 때 머리카락을 흩트리던 한밤중의 바람, 같이 무너지지 않으려 버티던 내 두 다리. 왜 이런 기억은 애쓰지 않아도 꼭 한 번씩은 더 보게 될 정도로 채도가 높은데, 정말 좋았던 순간은 무채색처럼 도통 눈에 잡히지 않는 걸까.


무엇이 되어야 한다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무엇이 되고 있는 지를 생각해. 더 나아지고 있는지, 혹은 더 나빠지고 있는지를. 여전히 무엇도 되지 못했지만 우리는 지금도 무엇이 되는 중이니까. 세상은 참 오묘해. 괴팍한 조물주가 얄궂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나쁜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도록 이 우주를 설계했다고들 하니까. 붕괴와 무질서를 향해 달려가는 게 우주의 법칙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쁜 무엇이 되겠지. 더 나쁜 쪽으로 가버리지 않으려면 지금 해야 하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언젠가 내가 들었던 가장 다정한 말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친절. 예컨대 누군가 너에게 함부로 하면 그러지 못하게 하라고, 그런 말로 편을 들어주는 것. 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서둘러 진정시키기 전에 가만히 기다려주는 인내심. 그렇게 눈물을 그친 사람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그런 친절도. 어떤 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데에는 노력도, 시간도, 감정적인 노동도 들어간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이지만 품을 들이더라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역시 완전히 나빠지고 싶지는 않다는 욕심이 있어서일까. 내가 망각한 많은 것들처럼 이 욕심도 언젠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도록 소멸될 수도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여전히 생각해. 사실은 점점 더 자주, 많이 생각하려 해. 언젠가 이 질문마저 사라지면 남는 게 뭘까 생각할 때면 아찔하니까. 아무래도 그래서 오늘도 생각해.


*이 글은 영화 <벌새>를 보고 쓴 소설입니다.